좋은 책으로 쳐주는 데에는 여러 가지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읽기 전과 읽고 나서의 변화가 그 으뜸이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지식을 보태어주던, 감정의 여운을 길게 드리워서 감성적 정서를 일깨우던, 사물의 보는 이치와 관점을 바꾸어주던간에 좋은 책을 읽고난 후의 독자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른 무엇을 느낀다. 그걸로 치자면, 나에게 있어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상중상의 등급에 속하는 책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되읽고 싶은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하셨다는데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감히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내용면에서의 질적인 단단함과 그 깊이는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바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흥미진진함과 재미를 제일로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을 터이고,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이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혹하여 집어들었다면 꽤 낭패감을 맛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해서 문화적 식견이 전혀 일천하다 해도 어느 정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이 주는 도드라지는 몇가지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본능에 가까운 미적 심상도 있겠지만, 문화와 예술에 관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 선과 색의 추상과 변주를 느끼지 못하고, 교향악을 들으면서 어디에서 감흥을 느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의 문화체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누구의 말처럼 예술을 감상하는 식견도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아서 일정 시기를 놓쳐버리면, 영원히 그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별히 답사의 목적을 갖지는 않았지만 경주도 여러 번 방문했었고 불국사와 경주국립박물관에 가서 ‘구경’도 했는데, 그것이 단순히 구경에 지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에밀레종과 석가탑, 무엇보다 감은사탑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와 내력이 숨겨있을 줄 알았을까. 알고 나서 보니 친숙해지고 관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전설과 민담과 역사가 어느새 애정으로 자라남을 느끼게 된다. 이제 책에서 등장하는 답사지를 내가 직접 보게 된다면 그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주는 것도 좋은 유익함의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 서술하는 문장과 낱말의 어울림이 무척 좋았다. 오래 묵은 김치와 된장의 맛처럼 구수하고 토속적이다. 마치 이문구작가의 토속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그렇게 난해하지는 않다. 담고 있는 내용의 충실함이 책 본래의 값어치라면 좋은 문장을 음미하는 맛은 덤이다. 글쓰기의 단어와 구성을 공부하는데도 좋은 선생이 되는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은 글로만 읽지만 글을 벗어나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오묘한 감동이 있다. 옛 선조의 문화재를 다시금 생생하게 부활시키는 것은 바로 그 애정어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