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래된 책을 좋아해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안에 담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 - p.62
시대가 변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버스를 타고 거리를 들여다보면, 책을 읽는 행인보다는 손전화를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카톡을 보내거나,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기가 발달되어 손쉽게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으나,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속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낼 수 있는 간극의 힘은 더 적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 물론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웹을 통해 전자책을 읽곤 하지만 어쩐지 디지털 속의 활자를 보고나면 전원을 켜고, 끄는 그 순간 활자가 사르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한다. 손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머리속에서 사라지는 글자들. 종이책의 유무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만 아직도 볼륨감이 느껴지는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마치 비블리아 고서당에 아름다운 여주인처럼.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면, 누군가는 성인이 된 후에 책의 매력에 빠져 스스로 이야기의 매력속으로 빠져든 케이스 일것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의 케이스에 해당하는데 지금이라도 책에 흥미를 갖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스케처럼 할머니 책장에 손을 대었다 크게 놀라 책을 읽을라치면 불안감에 사로잡혀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그에게도 할머니의 유품으로 그가 만지려고 했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그 후>의 이야기를 계기로 할머니가 그렇게 숨기고 싶어한 그녀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살았을 때 할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 했던 책을 손자가 손을 대었을 때 벼락같이 그를 혼냈던 이유도.
그것을 계기로 다이스케는 비블리아 고서당의 일원이 되고 책을 읽을 수 없는 대신에 손님들이 시노카와 시오리코씨에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 한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우라 다이스케의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 <그 후> 뿐만 아니라 고야마 기요시 <이삭줍기>, 비노 그라도프, 쿠주민의 <논리학 입문>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른 출간된 판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건수첩의 첫 페이지는 총 4장으로 되어있고 각각의 장을 통해 책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도 수만번의 인연이 겹쳐 하나의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이 덧대어지는 것처럼 책도 그 사람과 인연이 되어 만난다. 어떤 책은 손 쉽게 구하는가 싶은가 하면 어떤 책은 꼬리에 꼬리에 물면서도 절판이 되서 만날 수 없을 때의 그 안타까움은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책을 통해 할머니가 숨겨온 비밀을 알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책을 통해 짝사랑했던 남자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선물을 주려고 했던 사연도 알게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준다. 책을 좋아하다보면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선 탐욕의 계기가 되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 탐욕스런 눈빛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자행하는 일들이 일어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사건까지. 각각의 일들이 눈보라 치듯이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남모를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 책의 내용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이 더해져 진한 국물처럼 진하게 베어져 나왔다.
비블리아 고서당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주인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그녀가 행간을 읽어가는 능력 뿐 아니라 책을 좋아했던 이에 대한 손길과 정을 읽어내려가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든 모든 이야기가 담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점을 뛰어넘어 일본의 고서를 착안하고 다시 사람과 사람과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책의 이야기는 훨씬 더 풍성하게, 감종적으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사랑받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단행본으로 짧게 나온 이야기가 아닌 앞으로의 사건이 기대되는 시리즈가 있는 책이다. 앞으로 시노카와 시오리코시와 다이스케에게 의뢰하는 사건과 관련된 책이 궁금하다.
일본작가이기에 일본의 고서가 대부분 쓰였지만 우리나라 작품일 경우 어떤 작품이 컬렉터들의 눈을 반짝이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열린책들의 빨간색 도끼 전집이 떠오르곤 한다. 만약 시노카와씨가 옆에 있다면 나도 다이스케처럼 책에 관한 책들의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듣고 싶다. 국경을 넘어 우리에게도 비블리아 고서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희노애락의 수 많은 인생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더라면 우리는 책에서 찾는 행복과 위로를 더 깊이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힐링이 되는 비블리아 고서당의 첫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비블리아 고서당 리뷰대회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