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전반을 미국,필리핀,캐나다등지를 집처럼 떠돌며 살다가 30살 되기전에 워킹 홀리데이로 몫돈 좀 벌어보겠다고 호주의 오렌지 농장에서 6개월을 살다온 L양을 간만에 만났다.
"언니, 내가 호주 오렌지 농장에서 깨달은게 뭔지 알아? "
" 뭔데?"
"역시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거야."
"나원참. 오렌지 따는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을 것 같지?? 근데 상관있어. 호주란 동네가 말이야 시드니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곤 진짜 교육도 못받고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돈은 충분히 주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쁜여자한테 진짜 노골적이고 못생긴여자한텐 불친절해. 그 사람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진짜 그냥 이쁜게 좋은거야.
원래 사회가 무지할 수록 그런걸 감추지 않고 티를 팍팍내거든.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그런걸 감추는데 능숙한 것 뿐이지.
나랑 같이 간 친구는 얼굴이 꽤나 반반해서 한국에서도 남자들이 줄을 선 애였어.
물론 뼈속까지 속물이야. 걔. 양다리 삼다리 기본이고.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고. 그 후진 시골 타운가는데도 루이비통 들고 나가는 그런애야. 그런데도 남자들은 그런건 전혀 상관안해.
그냥 딱 보기에 예쁘거든. 좋거든. 그게 호주나 한국이나 똑같더라구. "
그녀의 말에 의하면 추녀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인종차별만큼 강한것이더라는거다.
사실 L의 외모는 예쁜편에 속한다. 오랜외국생활로 한국 평균여자보다 약간 덩치가 크다는 점을 빼곤 영리하고 재치있고 매력있는 여자아이다. 그러나 결국 전 세계를 떠돌고 얻어온 결론은 '여자는 예뻐야한다'라니.
우리는 크게 실망하였고 결국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앞에서 뷔페를 먹는것으로 스스로를 달랠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우울한 자본주의의 딜레마에 빠진 청춘성장소설로
보인다.
'나 원. 이 하루키 냄새는 뭐야,'하는 기분으로 첫 장을 읽어내려갔다.
처음 1장은 변비환자 같은 시니컬한 남자주인공과 지나치게 다소곳한 여주인공의 12월의 어느 겨울 20살 생일, 눈내리는 겨울밤, 영화같이 낭만적인 한 씬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낭만적 장면에는 작가의 계산(?)이 깔려 있었으니 바로 그 지나치게 낭만적인 씬의 여주인공이 지독한 추녀라는 사실이다.
그림이 그려지나??
갑자기 내가 읽은 그렇고 그런 장면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숙취 해소 광고처럼 '확~~깬다. '
남자주인공은 영화배우 아버지를 둔, 그런대로 괜찮고 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타입으로 그려지지만
여자주인공은 마치 검은 토끼들 사이의 흰 토끼처럼 배척받고 따돌림받을 정도로 못생긴 여자다.
못생긴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소설은 생경한, 신선한, 처음 읽는 소설이 된다.
주인공들은 백화점 아르바이트로 처음 만난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원동력으로 자본을 만들어내고 차별을 만들어내는 곳, 주인공들은 그 맨 아래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다.
닮으려고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보잘것없는 세계에서도 엘리베이터걸처럼 예쁘고 시선을 한눈에 받는 아가씨들과 못생긴 그녀는 능력과 상관없이 차별받는다.
못생긴 외모는 20세기 백인 미국사회의 흑인처럼 치명적인 것이다.
인간의 외면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듯 평생을 사는걸까?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린시절에는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거짓말에 속기라도 하지만 커가면서 오렌지 농장의 L처럼 어쩌면 그게 다 일수도 있다는 처참한 심경에 사로잡힌다는거다. 나이가 점점 드니 예쁜것만으로도 부족하고 몸매가 S라인이어야함은 물론 심지어 이젠 얼굴도 어려보여야한단다. 이 모든 불가능한 일들에 도전하기 위해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까지 합세해서 돈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이 '외모 지상주의'에는 정말 순진하게도 사랑받고 싶다는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욕망이 깔려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픈것이다.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거야.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걸 느끼고도 싶은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미녀는 사랑받을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지고 - 정말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영화배우 이민정처럼 생겼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ㅋ - 추녀는 상대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그 외모로 얻어지는 권력은 사회적인 파워, 즉 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외모와 부의 관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같다. 결국 '부'가 전제조건이 되는 '사랑'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거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참 우습지 않은가. 어느덧 나도 소녀시대를 보면서 기분이 나도 모르게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기분이 좋으니 그것을 선(善)이라 인식한다. 남자애들이 이쁜게 착한거라고 말하는걸 서글프게도 알것만같다. 딸을 낳게 된다면 이왕이면 예쁜애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의 말대로 이렇게 못생긴 여주인공이 주인공이 된 것은 최초일 것이며 이런 여주인공이 누군가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받아 '영원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완전 '비현실적인'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