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제는 <The Problems of Philosophy>이다.
한마디로 철학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란 얘기다.
그것이 한국에 출판되면서 새롭게 얻은 제목이 바로 '철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과연 두 제목은 하나의 책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자는 같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내용엔 아무런 차이도 발생하지 않았을까?
제목도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면 우리는 이 책이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라고 믿고 읽을 수 있는 것일까?
뭐,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현상과 실재.
본질과 표면에 대한 논의와 탐구.
그 모든 것이 철학이 사유하는 범주에 포함된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어 제목은 잘 어울리는 제목이면서 도 다른 의미에서는 전혀 엉뚱한 의미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 바로 철학인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마지막에 버트런드 러셀은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며 몇 권인가의 제목을 적어두고 있다.
물론, 나도 옮겨 적어두었다.
제목이 달라졌을 때 이 책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처럼 왠지 직접적으로 쓸모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왜 그런 것까지 따져 묻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라는 질문이 절로 튀어나올 만큼 '이게 뭔 소린가?'하는 생각에 골몰해야했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철학이란 본래 세상 모든 것을 다루던 학문이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난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니, 왜, 그보다 어떻게 고대의 철학자들은 과학자이면서 수학자이고, 철학자이면서 발명가이기도 한거야?"
지당한 의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명료했다.
철학이란 세상 모든 것을 다루던 하나의 학문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 철학의 중심 과제로 다뤄졌다는 것이다.
현상과 실재에 있어서 늘 불확실한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자의 일이다보니 그 가운데서 차츰 원리가 밝혀지고 분명해져가는 것들은 철학에서 떨어져나가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게 수학이 떨어져나가고, 과학이 떨어져나가고, 심리학이 떨어져나가고 이것저것 떼어주고 나니 남은 것은 여전히 난해하고 알쏭달쏭한 것들, 이런 것 정말 연구할 가치가 있는 거야? 싶은 것 뿐이 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러셀은 거의 100년 가까운 생을 살았다.
오, 그 긴 세월을 현상과 실재 사이에서 진정한 답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유하고 연구했을까?
철학은 분명 난해하고, 답이 없어보이고, 고리타분하면서 딱딱하고 재미 없어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재밌는 구석이 많다.
인간과 사물, 그 현상과 실재에 대한 깊은 탐구, 몰두.
그 모든 것이 사랑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는 어려운 문제가 정말 많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피해다니다보면 점점 더 커지고 어려워진다.
철학도 그런 것이 아닐까?
철학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철학의 맛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지는 않으련다.
도저히 재미와 흥미를 돋워주기 위해 적어나간 책이라고는 이야기 할 수 가 없다. 차마.
그래서 그가 남겨둔 목록에 적힌 책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걸 읽고 나서 한 번 더 읽어보면 그 때는 또 다른 맛이 날 것 같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철학은 재미있어질 수 있다.
한 번쯤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