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국가를 내세운다. "이모냥 이꼬라지"인 나라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힌다. 구국의 신념이다. 자신만이 탁류에 휘말린 나라를 구할 수 있단다. 그 표정 또한 얼마나 진중한지. 나는 그만 그들의 진정성(?)에 감동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 것 같다. 눈빛엔 불꽃이 팍팍 튀고, 얼굴 주변 표정은 파르라니 떨린다. 아, 이토록 나라를 걱정하는 지사들이 많은데,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 어두울쏜가!
백의종마(?), 김무성이 잔뜩 비장미를 품고 '감수성'을 연출하는 뉴스를 봤다. 내용인즉슨, 구국의 대오로 감수성을 흔들어대는 오랑캐를 무찌르자는 결연한 의지였다. 이런 것이다.
"급진진보는 연대해서 후보를 단일화하는데 우파는 왜 단일화하지 못하는가. 새누리당 후보 중에 다른 우파 정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사퇴하고 다른 우파 정당 후보를 지원해서 나라를 구하자!" 요약하면 이렇다. "우파 단일화로 나라구하자."
사실, 모를 소리다. 급진진보는 뉴규? 진짜 우파는 또 어데? 행여 지금의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를 '급진진보'라고 표현했다면, 똥오줌 못가리는 얼라의 칭얼댐이고, 새누리당과 일련의 비슷한 무리를 '우파'로 뭉뚱그렸다면, 꼴통 주제에 육갑 떠는 꼬라지다. 우파보다 '돈파' 혹은 '꼴통'에 훨씬 가까운 주제에 지랄 옆차기 하고 있다.
그건, <실미도>의 영악 혹은 발광과 닮은 꼴이다. 관객 1000만 넘은 국가주의 옹호 영화말이다. 기실 이 영화, 참으로 영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국가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도발적인 언사를 구사하면서 홍보했었다. 결과는 대성공. 연기한 배우들이나 고생한 스탭들은 고생하고 애썼다는 얘길 들을 만하겠으나 영화에 대해선 결코 동조할 수가 없다. 마케팅은 속임수를 썼다.
특히 이 영화, "국가주의를 끝장내라"는 식으로 언뜻 국가주의에 '메스'를 들이댄 듯하지만 그것, '할리우드 보이스 액션'이었다. 오히려 국가주의를 은폐, 아니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자기기만'에 '관객 모독'.
자, 그 이유를 따져보자.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이들의 비극. 그것이 <실미도>를 관통하는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카메라는 '왜 그들이 희생당했고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다루지 않는다. 당시 남북한 관계에서의 역사적 정치적인 의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 아니, 못한다. 애당초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실화'라는 외피로 둘러싼 면피 외에는 네버!
그 지점이다. 국가주의에 대해 정면 도전한다던 영화가 그 이면과 맥락에 대한 해석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 뭐 하자는 플레이? '스텝 바이 스텝'도 아니고 영화는 스타트라인에만 섰다가 오히려 역주행한 결과만 낳고 말았다.
그걸 얼버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감정의 과잉이었다. 김일성 목을 따기 위해 급조된 684부대원들이 내몰리게 되는 죽음. '무장공비'로 오인된 채 자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실미도>는 중앙정보부로 대변되는 국가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할 수밖에 없던 시대 상황을 차용해 눈물을 짜내는 방식을 택한다. 참으로 빈곤하고 빈약하다. 눈물을 짜내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착해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훈련장면과 '북파'가 좌절된 상황의 기술에만 역점을 둔 것이다.
시나리오를 꼼꼼히 따져보질 않아서 그 의도를 명확히 추론할 수는 없지만 편집된 영화만 놓고 보자면 <실미도>의 국가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개인과 국가, 그리고 역사까지 범벅된 이야기는 비장하거나 무겁기 마련이다. 강우석 감독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고 했지만 '개인은 국가나 역사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마초들의 영웅주의와 연대감을 강조하는 것이 다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들을 불쌍해하라고?
국가와 맞장을 뜨면 희생은 늘 개인의 몫임은 누구나 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의 빤함을 신파극으로 만들어낸 솜씨는 일품이지만 시대를, 역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결과는 한쪽으로 너무 기운다. 외려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소지를 남겨놓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대통령이라는 가카 개인에 대한 충성이 강조된 시대를 넘어 진짜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보라는 메시지냐 뭐냐? 국가를 형성하는 새로운 틀을 조성하자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교육대장의 자살도 한편으로 뜬금없다. 애초 그는 국가에 의해 684부대의 책임자로 임명됐고 국가의도에 맞춰 그들을 사육했다. 그의 판단과 행동의 근간은 국가라 일컬어지는 상부의 명령이었고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길들어진 인간형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갑자기 인간적으로 변신했다고? 그것도 자기 부하들이 몰살을 당하도록 하는 선택을 하면서? 무슨 연유로? 어떤 계기로? 그럴 바엔 진즉 684부대의 책임자로 임명되기 전에 자결해 버리지 그랬는가 말이다.(강우석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화 속의 교육대장은 망치로 맞아죽었다고 했다. 영화 속 자살은 감독의 '선택'이라고 했다.)
<실미도>는 거짓 눈물을 짜내는, 투박함을 가장한 기교에 불과하다. '이슈'에는 성공했지만 역사를 불러오는 데는 실패한 영화. 차라리 국가와 개인 간의 제대로 된 역사 인식과 영화사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업은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씨를 다룬 <선택>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실미도>의 카피는 너무 위선적이다. "32년을 숨겨온 진실... 이제는 말한다!" 이는 자신만이 그 진실에 접근했다는 오만함이다(자신감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 결론은 <실미도>, 국가주의에 반항을 하기는커녕 투항하고 응석을 부린 영화. 토할 뻔했다.
다시 돌아가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내 이권을 지켜달라'는 외침을 그렇게 포장하는 것도 기술이다만. 너무 뻔뻔하지 않아? 평소엔 나라 말아먹기에 여념 없는, 아니 나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작자(들)가 저리 외치다니. 하긴 원래 그들은 빤빤했지. 그래, 알면서 괜히 내가 앙탈부렸다. 하도 꼬라지가 개무성하여. 김무성, 보고 있나? 나라보다 비정규직부터 구해다오. 비정규직 구하는 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것일지니. 나는 나라 구하는 것 따윈 관심 없지만 비정규직을 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임을 안다.
뭐 당연히 민주통합당이 그 일을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 바보고. 그놈들은 정권 교체, 가카 심판만 알지, 세상을 바꾸는 세력도, 99%를 위한 세력이 아니니까.
내가 꿈꾸는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탈핵, 탈FTA, 탈학벌, 탈비정규직... 그러한 것이 내가 바라는, 진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셈인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