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박영란 역, [화차], 시아, 2000.
Miyabe Miyuki, [KASHA]. 1992.
제6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누구나 한 번쯤은 (깊이는 다르겠지만)신용카드의 늪(?)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대학 시절에 처음으로 카드를 만들었다. 적절히 잘 사용하면 좀 더 효율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의 자만심이었을까? 점점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나고, 카드와 현금의 쓰임이 커졌으며, 어느 순간에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이후에는 대부분 늪에 발을 적신 사람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걸었다. 입금 날짜를 다르게 하여 새로운 카드를 만들고,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돌려막기를 하고, 여기저기 주변 사람에게 손을 벌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늪의 깊이는 이 정도 뿐이었다.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되었고, 일 년간의 긴축생활 끝에 겨우 모든 채무를 해결할 수 있었다. 빚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그때의 추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이러한 나의 과거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일본에서 1992년에 발표된 미미 여사의 소설 [화차]는 끝없는 욕망으로 파멸해 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리고 신용카드, 대출, 파산으로 이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카드나 은행 대출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사람들 중에는 부지런하면서도 겁도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요. 그런 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업계의 구조부터 알아야 합니다."(p.130)
"다중채무자들을 싸잡아서 '인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하기는 쉽죠. 하지만 그건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한테 전후 사정은 전혀 들어 보지 않고 '운전 실력이 나빠서 그렇다. 그런 인간들한테 면허 같은 걸 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과 같은 소립니다."(p.142)
"시중 은행이며 카드업계가 학생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한 지 20년째가 되는데요, 이 20년간 대학이나 중, 고등학교에서 신용카드의 올바른 사용법을 지도해 준 적이 있습니까?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졸업 전 여학생들에게 화장법을 가르치곤 하는데 오히려 사회에 진출하기 전 신용카드나 돈의 올바른 사용법과 기초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139)
자칫하면 계몽소설로 치부되어 버릴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미미 여사는 그녀 특유의 글솜씨로 긴장과 전율이 가득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던 여인,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타인으로 살기를 원했던 여인... 그러나 운명은 짓궃게도 이 둘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화차(火車)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이다. 돌고 도는 불수레, 이 운명의 수레를 한 여인은 내리려고 했고, 한 번은 내렸다. 그러나 그녀가 되려고 했던 여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다시 그 불수레에 올라타 버렸다.
미미 여사의 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미미 여사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하는데, 20년 전에 쓰인 소설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단서 위주의 논리적 전개,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듯한 재미, 수사의 헛발과 반전,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그리고 미스터리임에도 문학성이 충분히 가미된... 그녀의 명성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