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전까지 충실한 독서에 열중할 수 없었다. 변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어리석은 마음에 서성거리기 바빴다. 그리고 낙관이 비관으로 끝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리고, 지금이다. 잠깐의 체념과 절망을 겪고, 아픈 죽음들의 소식을 접하며 다시 일어서려 한다. 그래서 읽은 지 세 달이나 지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담긴 내용과 대한민국의 2012년 12월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저자는 분산 자본주의를 말했고,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자고 했으며, 세계화에서 대륙화로 가자고 주장했다. 아울러 더 이상 애덤 스미스에 갇혀 있지 말 것을 호소했고, 산업 시대에서 협업의 시대로 가자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정의와 상식, 역사의 바른 길을 포기한 이들이 승리했다. 5년 전엔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말에 범죄 전력이 있는 이를 대통령으로 뽑아버리더니, 이젠 땅값, 집값이 떨어진다고 독재자의 딸을 서슴없이 지지했다. 역사의 올바른 청산과 정립은 또 다시 5년 뒤로 미뤄졌다.
적어도 이런 상황의 대한민국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호소하는 협업의 시대, 경제가 정의로운 시대는 요원해 보인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사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을 깨닫고,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을 분명히 인식한 가운데, 모두가 함께 에너지 민주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땅 위에서 얼마나 무력해 보이는가.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나아가야 할 길을 쳐다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 대한민국을 비켜갈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를 비켜갈 수는 없다. 때문이다. 여전히 이 책이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가.
제러미 리프킨이 제시하는 3차 산업혁명의 핵심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한다. → 모든 대륙의 건물을 현장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로 변형한다. → 모든 건물과 인프라 전체에 수소 저장 기술 및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보존한다. →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동력 그리드를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한다. → 교통수단을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륙별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상에서 전기를 사고 팔 수 있게 한다.
허황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EU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에너지 체제의 혁명전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곧 고갈될 화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는 붕괴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핵폭탄과 같은 원자력 발전에만 인류의 운명을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MB정부는 감히 녹색성장이라는 언어도단으로 이 강토를 더럽혔다. 그 후과는 두고 두고 후손들이 갚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녹색 성장은 자전거길 몇 개를 까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지 않고, 인류와 자연이 공존하는 것이다. 무식한 이들에게 정권을 맡긴 결과 우리는 녹색 성장은커녕 녹차라떼만 생산하는 국가가 되었지만 말이다.
기후변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어느 특정 지역에만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아니 외면은 우리만 깨끗하고 자연을 보존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선진국들의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중국의 아이들이 선진국에서 갖다버린 유독 폐기물을 뒤지면서 살아가는 한, 지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생물권 의식이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서 진화를 겪으며 체제 중인 동료 여행자 모두를 확장된 글로벌 가족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건방진 베풂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생존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분명 기후변화는 지금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엄청난 도전이다. 과거 특정 문명의 멸망은 다른 문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동식물의 대멸종과 우리 인류가 대규모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인류의 공적 자본, 시장 자본, 특히 사회적 자본을 활용해 3차 산업혁명 경제와 탄소 후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더 나은 대안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이 글에서 방대한 책의 내용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더 많은 바람직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며, 정체된 국가들에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분산 및 협업이라는 키워드는 세계를 진정한 의미의 동료로 만들어 줄 것이다.
동식물들이 사라지면 인류도 존재할 수 없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들을 식량, 애완의 대상으로만 바라봤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벼랑 끝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멈춰 세워야만 한다. 절벽이 분명히 보이는 상황이다. 그 끝은 단호하다.
혁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대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미사여구도 행동을 이길 순 없고, 행동보다 진실될 수 없다. 우리는 또 한 번 시련의 시기를 만들었다. 고작 집값에, 우리와 후손들의 미래가 저당 잡힐 순 없다. 어리석음을 반복하면 그것이 바로 상식이 된다. 그 다음은 절망과 포기가 될 것이다.
많이 아팠다. 너무 아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으면 안 된다. 더 이상 죽으면 안 된다.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는 필히 멸망한다. 우리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 나무들을 살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지만, 우리들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희망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가릴 수 없다. 그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제 다시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돌아다보며 걸어나가야 할 때다.
그리고 인류 뿐 아닌 지구상의 모든 동료 여행자들에게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과 들, 강과 바다, 수많은 동식물들. 이들이 없으면 우리도 없기 때문이다. 나만 잘 살겠다고 탐욕의 굿판으로 벌이는 이들이나, 인류의 생존만을 위해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는 집단이나 다를 바 없다.
동료 여행자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아니 스테판 에셀의 말을 빌리자면 ‘지탱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할 시기다. 이제 그만 울고, 그만 억울해하고, 다시 일어서자. 우린 이 땅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지구를 사랑해야 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