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위기》(한길사, 2011)는 세 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정치에서의 거짓말>은 정치에서 이미지 제작과 공적 관계의 역할을 다루고 있는 미 국방부 보고서를 심도 있게 분석해 거짓말이 행위의 한 형태이지만 정치영역을 손상시킨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시민불복종>은 자유의 기수에서 전쟁 반대자들과 분리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저항운동을 검토하고 있다. <폭력론>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파리 학생시위, 구소련의 체코 침공 등의 폭력을 목격하면서 집필하여 1969년에 출간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폭력의 세기》(이후, 1999)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우선적인 이유는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아렌트의 폭력론이 어떠한지 궁금해서다. 권력, 폭력, 권위 등에 대한 아렌트 정의는 조르주 소렐이나 푸코와 같은 유명한 권력이론가들과는 그 접근법이 다르고, 전체적으로 보면 고지식한 정식화라는 단점을 내보인다.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엄밀하게 구분한다. 아렌트의 권력은 지배나 피지배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에 폭압적인 군주의 권력이나 마키아벨리식의 지도자의 권력을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아렌트의 권력론은 공공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는 시민적 권력 개념을 그 저본으로 한다. 권력이 무엇보다도 공동으로 활동하는 능력이며, 사람들이 모일 때 나타났다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유명한 말은 아렌트가 보기에는 어폐가 있는 표현이다. 권력은 폭력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제휴하고 행동할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언어행위를 수반하는 현상인 권력은 가능태로 존재하기에 강제력이나 내구력 같이 측정가능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폭력은 언어행위인 설득이 한계에 직면할 때 나타나는 한계적인 정치현상이다. 권력이 언어행위를 매개로 나타나지만, 폭력은 수단을 매개로 사용된다. 권력이 함께 모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서 상호간의 동의와 지지에 바탕한 것이라면, 폭력은 사람수에 상관없이 강제ㆍ복종을 지향할 뿐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 권력이 상실된 곳에서 폭력을 통한 지배가 작동하게 된다. 폭력은 권력을 파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권력을 생산할 수는 없다. 인간은 사물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자연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근본적으로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 폭력은 물리적 강제력, 신체력 등과 같이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적 현상이다. 폭력본능을 동물적 본능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 전락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한편, 권위는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는 힘이다. 권위는 항상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특정 형태의 권력이나 폭력으로 오인되지만, 권위는 외부적 강제수단의 사용을 사전에 배제한다는 점에서 권력이나 폭력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