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나 표지 삽화에서 코믹함이 묻어났기에,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 착각했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지호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거 같아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요즘 들려오는 사회관련 기사들 중에는 마음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픔을 말하지 못해 혼자 힘겨운 싸움을 해야했던 아이들은 결국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기도 했다. 내 아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다보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힘도 얻게 된다. 그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리라.
"아빠는 언제쯤 말이 하고 싶어질까?" (본문 58p)
이 글귀에서 왠지 먹먹함을 느꼈다. 주인공 지호가 정말 원했던 것은 아빠와 이야기하고, 아빠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아빠는 늘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빠뿐만 아니라 지호는 말할 상대가 없었다. 오로지 새와 벌레와 다람쥐들 뿐.
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 지호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늘 과묵했으나, 아빠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말을 잃었다. 아니 말이 없어졌다. 학교에서는 왕따인 지호는 선생님의 물음에 답변을 하는 것 외에는 하루종일 말할 상대가 없었다. 때문에 새와 다람쥐에게 말을 하게 되었고,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은 점점 지호에게 멀어졌다. 도깨비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 할머니가 없었다면 지호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날도 어김없이 세 악당에게 쫓기던 지호는 말투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말을 참 잘하는 외국인 아줌마와 부딪치게 되었다.
알고보니 외국인 아줌마 줄리는 지호의 앞집에 살고 있었고, 할머니와도 아주 친한 듯 보였다.
다음 날,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해 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고 돌아가던 지호는 어제 아줌마와 부딪혔던 장소에서 까만 돌을 발견하게 되고, 홧김에 걷어찬 돌이 '아얏!'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된다. 이상한 돌을 갖게 된 지호는 밤마다 학교에서 있던 일을 돌에게 말하게 되었고, 돌은 조용히 지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간혹 지호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까만 돌을 잃어버린 줄리 아줌마가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을, 이 돌이 아줌마에게 의미있는 돌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호는 줄리 아줌마에게 돌려 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 아빠는 지호의 책상 서랍에서 돌을 발견하게 되고, 말하는 돌임을 알게 된다.
지호 아빠는 지호가 밤마다 까만 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도 돌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지워 버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돌에게 털어놓는다.
까만 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중간에 끼어들지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지호 아빠는 까만 돌이 마음에 들었다. 만일 까만 돌이 중간에 끼어들었더라면 가슴속의 도둑고양이는 다시 마루 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중략)
얘기를 하고 나니 가슴에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눈가에 따뜻한 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본문 111p)
여행을 하다 사막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돌을 발견하게 된 줄리 아줌마는 돌을 갖게 된 다음부터 좋은 일이 생겼다고 했다. 지호도 까만 돌이 생긴 다음부터 자꾸만 좋은 일이 생겼다.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친구도 생겼고, 아빠가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말하는 까만 돌>>에서 왕따, 학교폭력, 가정의 문제와 폭력 등 우리 아이들이 가진 아픔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데, 너무도 어둡고 아픈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까만 돌이라는 판타지를 이용해서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말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마법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경청의 힘이 아닌가 싶다. 말하는 돌은 그들에게 많은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까만 돌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말하는 지호나 지호 아빠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픔을 꺼냄으로써 상처와 대면하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바쁘고 힘겹게 돌아간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내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또 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부유한 환경이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성장하고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이 작품은 상처입은 지호를 통해서 '대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간섭'이 아닌 '관심'이 필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부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다.
<<말하는 까만 돌>>은 우리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을 통해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에게 까만 돌처럼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주기를 혹은 상처를 입고 아파한다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권한다.
책은 마치 까만 돌같다. 주인공처럼 아파하는 친구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 <<말하는 까만 돌>>은 우리 아이들에게 까만 돌과 같은 존재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보듬어 줄 수 주리라.
(사진출처: '말하는 까만 돌'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