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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계속 코카콜라를 마신다.

글쓴이: 하늘로 기어간다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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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입학 때부터 결혼하기 직전까지 10년 정도 자취생활을 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볼꼴 못볼꼴 다봤다.


무개념의 원룸 주인과 밤만 되면 싸우는 옆집 커플과 새벽녘에 만취되어 문 열어달라고 행패부리는 아저씨.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엄마 내일 반찬 들고 올라간다”


였다.


 


 


자취생활을 한 남자들은 많이 공감할 듯한데, 사실 남자 혼자 자취생활하면 아주 가관이다. 구석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탈피하듯 쏙 빠져나와 옷장에 널브러진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어제 아침 해 놓아 누렇게 변색된 밥과 언제 씻었는지 모를 김치를 냉장고에서 반찬통 채로 꺼내 영원한 자취생의 친구 동원 양반김과 함께 휘리릭 식사완료.


 


그런데 어머니가 오신다니!!!!


이건 전쟁이 나는 것보다 더욱 청천벽력이다.


 


학생이던 때는 수업을 빠져서라도, 일할 때는 조기퇴근을 불사해서라도 어머니가 오시기 전 자취방의 묵은 때와 켜켜이 쌓인 냉장고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들을 제거해야 했다.


미친 듯이 집단장을 마치고 초조히 어머니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얼마나 억겁 같았는지…….


 


혼신을 다한 청소는 매번 어머니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쩜 그렇게 내가 놓친 구석만 골라내시는지 어머니는 초능력을 가지신 게 분명했다.


잔소리 17단 콤보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있는 나에게 마지막 하이라이트.


냉장고~!! 냉장고를 여시고 난후 내 등짝을 후려치시며 하시는 말


 


“또 콜라 먹었어!!!!!!!!!!!”


 



                                                        (나야 나^^)


 



그랬다. 코카콜라는 내 애인이자 친구이자 동료였다. 배가 고프면 빨간 마개를 열어 벌컥, 출출하면 빨간 마개를 열어 벌컥, 목마르면 빨간 마개를 열어 벌컥, 친구가 오면 빨간 마개를 열어 벌컥


 


어려서부터 특별히 콜라를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늘 냉장고에 콜라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밥도 안 챙겨먹는 놈이 늘상 콜라 마시고 있다고. 이빨 다 상하고 속 다 버린다고 버럭버럭 소리치셨지만 어쩌나~~ 콜라가 좋은걸. 거사를 치르고 어머니가 내려가시면 바로 슈퍼로 고고씽~! S라인 용기에 담긴 검은색 애인, 친구, 동료를 껴안고 집으로 와 작은 냉장고가 터져 나갈 듯 채워놓으신 어머니의 반찬들을 모두 제치고 코카콜라가 들어가신다.


 


“전 세계 200개국에서 1초마다 7,000병이 판매되는 음료수”


“처음 판매 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코카콜라는 하루에 10억 병 이상이 소비된다. 전 세계 인구의 94%가 코카콜라를 안다.” (p.108)


 


전 세계 사람들이 OK라는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아는 단어가 ‘코카콜라’라고 한다. 오랜 자취생활을 끝내고 결혼 한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콜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아주 가끔 사다 먹기는 하지만 자취방에서 마시던 그 맛이 아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우드러프는 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면 더 높은 봉급을 제안하여 회사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코카콜라의 이익을 추구했다.” (p.215)


 


 


뭐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관행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저자인 윌리엄 레이몽은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의 관행이 굉장히 부도덕적인 일로 여겨졌다 보다.


탐사전문 기자라고 하시는 윌리엄 레이몽씨~~!!


언제 한번 시간 내서 한국으로 와 보세요. 여기는 완전히 별천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무조건!!!! 그 이상입니다.


삼성이라고 아시나요? 슬쩍만 들여다보세요. 이런 「코카콜라 게이트」같은 책이 수천 권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사실 프랑스가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다 보니 책의 곳곳에서 프랑스인 특유의 자만심이 베어 나왔다. 유일하게 시장 개척을 하지 못한 곳도 프랑스이다 보니 은연중에 우쭐대는 듯한 문장이 나온다.


그래도 뭐 나는 계속 코카콜라를 마실 생각이다.


코카콜라가 없으면 내 10년의 자취생활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비밀유지 관행은 전 세계적인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고 귀중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코카콜라가 택한 유일한 수단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p.29)


“코카콜라는 제조법에 대한 비밀을 계속 유지하면서 제품에 ‘신화’와 ‘마술’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덧입힌다. 이렇게 하여 코카콜라는 하나의 상징이 됨과 동시에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아이콘으로 변화했다.” (p.34)


 


이것은 몰랐던 내용이다. 열심히 마시기나 했지 ‘특수한 제조비법’따위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서 도대체 뭘 한단 말인가.


 


자본주의 시대에서 내가 만든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을 조장하고 방조해 왔다. 물론 그것이 선은 아니지만 악도 아니다. 누구나 사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코카콜라의 대단한 영업 전략이다. 120년 간 독보적 1위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초기 역사를 철저히 가려온 덕분이더라도,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제조법을 마치 마술인양 포장해온 상술이더라도,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끝없는 로비덕분 이더라도 나는 계속 코카콜라를 마실 생각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기업들의 행태와 작태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코카콜라의 이면의 모습. 더 악랄하고 더러운 모습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별로 그런 모습을 찾지 못했다. 콧대 높은 프랑스 기자의 투정정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치가 떨리는데, 레이몽씨도 이 책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코카콜라를 생각한다」로 다시 좀 적나라하게 밝혀줬으면 좋겠다. 아~! 물론 가능하다면...


 


 


그때까지는 코카콜라를 마셔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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