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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을 만나다

글쓴이: 자하님의 블로그 |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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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 모옌(莫言)에게 돌아갔다. 모옌은 1980년대 향토문학의 대명사였다. 그는 출생부터 토지와 농촌의 후예답게 태어났다. 1955년 음력 2월 17일, 8명의 아이들 중에 막내로 태어난 모옌은 '만물은 흙에서 태어난다'는 고향 풍습대로 어머니 밑에 깔아둔 흙더미 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을 맞이하고, 그 후 17살 때까지 아무런 정식교육도 받지 못하고 그저 소치고 꼴베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이야기에 흙냄새와 하층민중의 척박한 삶이 투영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산동의 고향에 대해서 모옌은 애증이 교차하는 양가감정을 드러낸다. 불행한 어린 시절은 작가의 요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모옌은 이 말에 동의한다. 어린 시절은 또한 꿈이 많은 시기. 그래서 모옌의 이야기에는 영악한 아이들이 등장하고 어린 시절 들었음직한 전설이나 괴담 그리고 우연 같은 현실이 언급된다. 모옌의 장점은 악동들의 유머, 시대적 부조리에 대한 풍자 그리고 전설과 현실이 중첩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있다.


 


그동안 내가 읽은 모옌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우선 국역본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바로 [인생은 고달파](창비, 2008)다.


 







인생은 고달파



작가

모옌

출판

창비

발매

200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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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달파



작가

모옌

출판

창비

발매

200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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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달파]는 소설로 치면 중국 향토 버전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다. 마술적 사술주의의 기법뿐만이 아니라 가족사와 시대사를 묶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모옌의 작품이 마르케스의 것보다 유쾌하고 해학적이라는 점. 나는 마르케스보다 모옌을 한 수 위로 친다. 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영화로 본다면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떠올리게 한다. 공통점은 고정된 공간을 바탕으로 불교의 윤회사상과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인 귀토사상 그리고 인간 욕망의 영원회귀를 그렸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모옌은 축생도와 인간도의 육도윤회와 시대변천에 따른 인간 욕망의 외적인 투사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이 책의 원제인 [생사피로生死疲勞]는 불경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 모옌은 43일만에 55만자에 달하는 [인생은 고달파]를 완성했다. 43일만에 50여년의 중국 역사를 조명한 대단한 실력이다. 그의 입담은 장회체 형식과 불교의 윤회를 모티브로 하여 1950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중국사회의 변혁을 그려낸다. 공간적 무대는 고밀 동북향의 서문촌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화자는 악덕지주로 총살을 당한 서문뇨(西門鬧)와 그의 윤회적 분신들(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 남천세), 그리고 남검의 아들인 남해방(藍解放)이다. 서문나귀와 남해방 모두 1950년 1월1일에 태어났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가 이들과 더불어 시작되고, 이들 자손들의 이름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다. 남검의 자손들의 이름(아들 해방, 손자 개방, 증손자 천세)은 중국 개혁개방의 물결과 주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 


 


소설의 주요 갈등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개인농 남검과 촌장 홍태악간의 대립과 갈등이다. 둘은 마치 거울 속의 이미지처럼 서로 거꾸로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검이 휴머니스트라면, 홍태악은 혁명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이념기계다. 다른 하나는 서문가 내부의 갈등이다. 서문뇨의 분신들과 연계된 남검의 일족들과 홍태악을 따르는 후손들간의 갈등이 이에 속한다. 


 


이야기의 큰 축을 형성하는 인물은 서문뇨와 남검 두 사람이다. 서문뇨의 육도윤회는 남검 후손들과의 연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수미상관적으로 대두 남천세가 서문가의 가족사를 구술한다는 점도 순환하는 인연의 고리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남검은 본래 서문뇨 집안의 머슴이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는 서문뇨의 둘째부인인 영춘과 결혼하여 남해방을 낳는다. 고밀현 부현장인 남해방은 황동과 오추향의 딸인 황합작과 결혼하여 남개방을 낳는다. 그리고 남개방과 방봉황은 남천세를 낳는다. 천세란 이름은 그가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1년 1월 1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시대적 변천사로 말한다면, 남검과 서문나귀는 토지개혁, 합작사, 항미원조와 대약진의 시대를, 남해방과 서문소는 문화대혁명과 우파평반의 시대를, 남개방과 서문개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시대를 헤쳐 나간다.


 


한국작가의 작품 가운데 소설 한 권에 특정한 농촌마을을 무대로 50여년의 변천사를 담아낸 작품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박경리와 조정래의 작품이 떠오르지만 단권에 담아낸 작품은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의 향토문학은 이미 멸종했지만 중국의 향토문학은 모옌이란 커다란 산맥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모옌은 4인용식탁과 사적인 신변잡기를 탈피하여 가문의 생명사를 장구한 역사적 분위기와 맞물리게 써내려가는 문학적 상상력이 탁월하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작가

모옌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0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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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



작가

모옌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0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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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옌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1995년 4월 2일 일요일 오후 1시 30분. 1993년도 북경사범대학출판사에서 나온 모옌 최신 중단편소설선 [신료神聊]를 가지고 스터디를 했기에 월일과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다. 한 편마다 약 10쪽가량의 분량으로 총 21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책의 맨 마지막 여백에 "但願脫穎而出,更上一層樓!"라고 적혀 있다. 내 어린 시절의 열정과 패기가 느껴진다. 15년이 흐른 뒤 다시 모옌의 작품을 손에 잡았다. [홍까오량 가족], [달빛을 베다] 그리고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세 권을 몰아서 읽었다. 번역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번역자 박명애와 임홍빈은 모옌의 작품을 번역하기에는 깜냥이 부족하다. 박명애는 기본적으로 중국어 실력이 미치지 못하고, 임홍빈은 유행어와 구수한 욕지거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글을 희한하게 만들어 버린다.


 



2009년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이 책[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표제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師傅越來越幽默)>와 더불어 <소(牛)>와 <30년 전의 어느 장거리경주(三十年前的一次長跑比賽)>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의 주인공은 정년을 한 달 앞두고 강제퇴직 당한 모범 노동자 정십구(丁十口)다. 정 사부는 생계수단을 골몰하다가 유료화장실을 이용한 경험을 살려 숲 속에 버려진 폐차를 연인들의 휴게소로 개조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버려진 버스를 간이식 러브호텔로 만든 것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갑남을녀가 늘어나면서 정 사부의 체면과 양심도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에 비례해 뻔뻔해지고 무뎌져간다. 어느날 한 커플이 안으로 들어간 뒤 감감무소식이다. 이들이 동반자살을 한 것으로 생각한 정 사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현직 경찰인 도제의 사촌아우를 부른다. 


 


<소>에서는 화자인 개구쟁이 나한(羅漢), 가축사육사 두(杜)씨 영감, 인민공사 생산대대 대장 곰보 아저씨와 수의사 동(董) 씨가 등장한다. 두씨 영감은 딸만 다섯인데 첫째는 인민공사 공동식당의 취사원에게 시집을 갔고, 둘째는 임업 노동자에게, 셋째는 경찰견 사육사에게, 넷째는 인민공사에서 도축을 담당하는 팀장에게 , 다섯째는 목수에게 시집을 갔다. 이들이 소를 거세하고 남은 부산물인 쇠불알과 전염병으로 죽은 소를 두고 벌이는 여러 해프닝들이 징글징글하고 유쾌하다. 1970년 5월 1일 노동절날, 300여명이나 되는 인민공사 간부들과 가족들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린다. 죽은 소를 폐기처분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몰래 고기를 돌려먹은 것이다.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경주>의 주인공은 소학교 임시교사 주총인(朱悤人)이고 핵심사건은 30년 전 노동절 기념 운동회 시합이다. 주 선생은  못생긴 곱추등이 중년남자로 여우를 닮은 동네 과부 피수영(皮秀英)과 결혼했다. 아내의 고질병인 가슴앓이 통증을  완화할 목적으로 집 뒤뜰에서 양귀비를 재배한다. 당시 소학생인 화자의 눈에 주 선생은 운동만능에다가 자신의 무쇠머리로 마을의 왈패들을 물리친 영웅이다. 이야기의 전반적인 틀은 성에서 내려온 우파분자들과 고향의 본토박이들로 구성된 혁명분자들간의 대립과 노동절 기념 운동회의 장거리 달리기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마을 농장에 400여명의 우파분자가 노동개조를 목적으로 거주한 적이 있는데 신문사 편집장, 병원 외과주임. 유명 여배우, 얼후 연주자, 건축 엔지니어, 대학교수, 운동선수, 작가, 회계사, 대학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자가 보기에 이들 우파분자는 오히려 본토박이들에 비해 재주많은 유능한 사람들, 생기발랄하고 낙천적인 사람들이었다.


 







달빛을 베다



작가

모옌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0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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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베다]는 2006년도 북경시월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된 모옌의 책을 번역한 것이다. 원서는 총 1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한글 번역본은 치사하게도 이를 두 권짜리로 만들어 놓았다. 12편을 수록한 [달빛을 베다]와 3편을 수록한[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로 말이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師傅越來越幽默)>, <소(牛)>, <30년 전의 어느 장거리경주(三十年前的一次長跑比賽)>란 세 작품으로 되어 있다. 다음 개정판 때에는 이 두 권을 합쳐볼 생각이 없는지 궁금하다. 합쳤으면 좋겠다.


 


[달빛을 베다]는 공포와 희망을 주제로 옛날이야기와 동화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 12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80년대 문화대혁명은 전반적인 사회적 공포였다. 저자가 공포소설로 풍자하고 비판하고자 한 것은 이런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공포가 요괴나 귀신의 것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정과 의리 그리고 인간애와 따스한 관심을 얻는 방법으로 일찍이 할머니가 들려준 무서운 옛날이야기의 힘과 기능을 강조한다. 예술이 재현한 공포에는 사회적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과 용기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모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장차 닥쳐올 미래의 시대에는 악한 사람이 빚어내는 공포는 갈수록 줄어들기를 희망하지만, 귀신과 요괴들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나 괴담, 동화가 빚어내는 공포만큼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귀신과 요괴가 등장하는 옛날이야기와 동화야말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과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지향을 가득 품은 것이며, 또한 문학과 예술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13쪽)


 


2004년 인민문학 최우수 단편소설상을 받은 환상소설 <달빛을 베다(月光斬) >는 21세기 이메일 통신과 옛날이야기의 형식에다 대장장이의 전설과 무협지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엉뚱발랄함이 매력인 소설이다.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월광참도'는 [의천도룡기]의 도룡보도에서 빌려온 것이다. 김용의 무협소설과 경요의 드라마를 본 이들은 친숙한 이름들을 꽤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와의 만남(與大師約會)>은 유쾌한 풍자소설이다. 먼저 팬들의 입을 통해 노골적인 성행위를 대담한 퍼포먼스다 뭐다하며 포장하는 현대예술의 값싼 쇼비즈니스를 풍자한다.  "그 사람은 신성과 범속, 고귀함과 비천, 애정과 육욕을 하나로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어." 또한 짝퉁 예술청년들을 대거 등장시켜 겉멋만 들어 젠체하는 예술가들을 풍자한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제멋대로 괴발개발 그어대고 고양이 '야옹' 소리만 내면 다들 예술가 축에 드는 줄 알고 있으니 말이야. 위대한 예술가라, 스스로 예술가 딱지를 붙인 것들이 강물에 올챙이보다 더 많다니까!" 한심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유명인사를 숭배하는 열혈팬들도 작가의 날카로운 풍자의 칼을 피하지 못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들 이렇듯 치정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 치정에 얽매일 줄 모른다면,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감탄할 게 따로 있지 싸구려 낭만으로 범벅된 치정 따위에 감탄하는 예술청년들이 한심해 보인다. 이외에도 <목수와 개(木匠和狗)>와 <엄지수갑(拇指銬)> 같은 이야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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