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0월 1일 오후 북경 천안문 광장 성루에 올라간 모택동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전 세계에 신중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1921년 상해의 골목에 있는 작은 집에서 이른바 제1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린지 28년 만에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63년 중국 공산당의 큰 굴곡없이 13억 인구대국을 나름대로 잘 이끌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방언론과 소위 반체제 인사들은 중국 공산당의 몰락을 수년전부터 예단해왔지만 그야말로 그들만의 판단이었다. 유독 저명인사의 죽음과 맞물려 그가 죽은 뒤 중국은 혼란기에 빠질 것이다라면 다소 안이한 평가를 내렸으나 단 한번도 그들의 예측이 맞은 적은 없었다.
파이카에서 내고 파이낸셜타임스 기자였던 리처드 맥그레게가 쓴 중국 공산단의 비밀이라는 번역서적은 바로 이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비록 피상적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 저널리스트로서의 안목을 버리지 않고 꼼꼼하게 적시해냈다는 느낌이다. 모두 7개의 챕터로 나누어 중국 공산당과 관련되 키워드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데 저자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 위주로 서술한 탓에 관변 서적이 주는 딱딱한 맛은 덜하다. 워낙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에 언론 기자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고충을 감안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모택동 사후 헤게모니를 쥔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로 이어주는 최고위 권력자들 주변에 흘러나와 떠돌던 이야기도 적절하게 담아내어 이른바 정치 스토리가 비인기라는 말은 하지 말걸 그랬냐 싶기도 한다.
세상에 어떤 정당도 중국 공산당 이상으로 공고한 체제를 갖춘 조직은 없어 보인다. 나라의 안위를 책임지는 군대도, 또 행정수반들도 모두 당 수하의 개념이다. 하기사 이런 탄탄한 조직력이 있어야 나라를 끌고 나갈 텐데 말이다. 78년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든 중국은 종래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거의 전부였다면 그 이후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이념만으로는 먹기 힘들 겠다는 선지자적 예측은 확실하게 맞아 떨어졌다. 등소평의 남순강화를 계기로 촉발된 경제개발은 20년 뒤 세계가 공포스러워 할 이른바 블랙홀로 간주되었다. 세계의 공장에서 시작해 세계의 시장으로 탈변하기 까지 서구의 국가들의 수백년에 걸쳐 쌓아온 틀을 중국은 이제 2,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을 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공과에 대한 평가도 같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책에서는 절묘한 사다리 타기를 해가며 중국 공산당이 오늘날 소위 G2라고 불리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양시론, 혹은 양비론을 들어가며 논하고 있다. 당과 비즈니스와 당과 자본주의라는 챕터에 골고루 소개된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사회주의 기치 국가에서 일부분에서는 자본주의 국가 보다 더 자본주의 성향을 보이는 시스템이 구동되는 바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또하나 서방언론이 늘 반격해 마지 않는 부패에 대한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조직은 멈춰있으면 고인 물이 그러하듯 썩게 마련이다. 그러면 중국 공산당은? 수뇌부의 경우라면 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하부조직으로 내려가면 간혹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정치조직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지만 중국은 그럴 경우 여지없이 단죄를 하기에 비록 외부의 시각에서는 인권탄압으로 비춰질 지언정 거대국가를 위해선 소는 언제든지 희생되어질 수 있다는 사회구성원 간의 공통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것은 중국 역사가 주는 교훈과도 맥이 닿는다. 수없이 많은 朝代가 명멸하는 과정속에 대부분의 멸망국가를 보면 우매하기 짝이 없는 昏主와 그런 황제 밑에서 사리사욕만 채우던 관리의 부패로 말미암음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리석은 황제는 불쌍하다 여기지만 부패한 관리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중국 국민들의 인식이다.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지고 대륙의 주인이 되기까지 군대는 결코 공산당의 편만은 아니었다. 군벌에서 시작된 군력의 다툼은 국민당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대장정을 이끌며 하나 둘씩 형성된 이른바 홍군이 지금의 공산당을 유지하는 인민해방군의 전신이다. 당연히 공산당은 인민해방군의 조력자이자 군림자이며 당과 군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만약 급변사태가 일어나 공산당이 아닌 다른 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군은 과연 어느 편에 설까? 묻지 않아도 뻔하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부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년시절부터 마치 온실안에서 배양되는 과채류처럼 외부의 더러운 바람에 물들지 않도록 양성된다. 이제 나이 쉰을 넘긴 차세대 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주 무대에 올라설 정도가 되었으니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은 움을 틔우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이곳 저곳에서 보여질 것이다. 물론 적자생존의 법칙은 여기서도 적용되며 혹여 정체성에 의심을 받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거나, 당의 이념을 거스르는 경우, 제 아무리 원로의 비호를 받는 태자당 출신이거나 공청단 엘리트 출신이라도 살아 남기 힘들다.
중국 공산당의 시작은 정말 일천했다. 지금도 상해 좁은 골목길(아이러니하게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 근처)에 빨간 벽돌집에 기념관이 있다. 그곳을 지나며 느낀 소감은 과연 무슨 힘이 작용했길래 세계 최대 인구국가인 중국의 주인노릇을 하게 되었을까 싶다. 정치란, 하나의 것은 아닌 셈이다. 그안엔 국민이 있고, 사회가 있고 진보의 채찍질이 있다. 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외부의 시각에 대해서도 “중국식”이라며 의연해 하는 것. 오랜 역사 의식에서 축적된 일종의 정치DNA가 기존의 왕조시절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게 중국 역사상 최대 강성왕조라 하는 당나라, 청나라의 모습이라 한다면 아직은 서방국가와 언론이 기대하는 전복이나 쇠퇴의 길에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들은 결코 “중국식”이라는 개념을 충분히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서양기자의 눈과 마음을 통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편견이 녹아있음을 엿보인다. 그렇지만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마치 장맛이 우러나듯 일반인들은 멀리서 얼굴 조차 볼 수 없는 요직의 인물들과의 실제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사실에 근접한 사실들이라는 이야기로 믿고 들여다 본다면 지금까지 잘 몰랐던 중국 공산당의 비밀 몇가지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편견을 깰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