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연수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의미일게다. 오히려 친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은 내겐 너무 낯설다.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작품들을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아직 그의 글맛을 맛보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신작 소식은 내게는 특히 더 반가운 일이다. 이왕 그의 글맛을 맛보려면 신작이 더 맛나지 않겠는가.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원더보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기에 책을 구입하는 것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왠지 원더우먼이 떠올랐기에 더욱 제목에 이끌렸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읽어보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이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일단은 읽는동안 참 많은 것을 곱씹어봐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묵직한 소설보다는 가벼운 소설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1980년 사회를 반영하는 내용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체때문에 오랜시간에 걸쳐 책을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곱씹어본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나, 나와는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소설이다.
열다섯 살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먼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긴 하지만, 1980년 대를 살아가는 한 소년이 변해가는 사회의 물결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고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하면 좀 나으려나. 부족한 나의 표현력에 잠시 고개를 떨군다. 그냥 어렵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해두자.
1980년대 초에 나는 국민학교(책속 표현대로 초등학교라는 말 대신 국민학교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다. 실제로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으니 말이다.)를 다녔다. 고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 했던 때였다. 한참이 흐른 뒤에야 80년대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국민학생으로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질 거야. 웃고 행복하다가 또 괴롭고 슬플 거야. (표지 中)
1984년, 열다섯 살 정훈은 시간이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곧 '원더보이'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트럭에서 사시사철 각종 과일과 열매 들을 파는 아빠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빠는 목숨을 잃었고, 정훈은 혼수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정훈이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은 우주비행사처럼 밤거리의 불빛을 향해 나아가던 그 옆모습이었다. 이 사고로 아빠는 살해하는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을 향해 돌진한 애국지사가 되었으며(그냥 그렇다면 그런거다.논리는 필요없다), 정훈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원한 탓에 기적을 일으켜준 희망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리고 또하나, 이 사고로 정훈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얻었다.
결국 이 사고와 능력으로 정훈은 권대령에 의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지만, 초능력자인 마스터 피터 잭슨을 통해 아빠의 에너지가 아직 자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엄마의 메시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돌아갈,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도망친다.
그 이후로 정훈은 저마다 상처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껴 살아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두 눈동자로 바라볼 때,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생생한 연극 같았다. 무공 아저씨의 말처럼 산은 더욱 산이 되고자 하고 물은 더욱 물이 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그건 더욱 내가 되는 일이었다. (본문 159,160p)
1980년대와 현 2010년대는 너무도 다르다.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고, 여기저기서 화염병이 터졌다. 불과 30년의 시간동안 세상은 너무도 달라졌다. 이는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투쟁, 죽음 등이 만들어낸 기적이라 말해도 좋으리라.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도 기적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1천65억 개 중의 하나인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기적을 이미 갖고 있으니 말이다.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 (본문 309p)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던 정훈이 만난 사람들, 선재 형,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강토 형, 무공 아저씨와 재진 아저씨가 그랬듯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괴롭고 슬픈 어두움 속에서 헤매일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어둠이 빨리 걷히기를 바라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 어둠이 있을 때 '기적'은 비로소 '기적'이라는 이름의 값어치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314p)
결국 슬픔과 아픔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하나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둠이 기적을 기적으로서 빛날 수 있게 할 수 있듯이.
책을 읽는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이렇게 미약하나마 서평이라는 글을 쓰면서 조금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사회의 변화와 성장을 소년이었던 정훈의 성장과 맞물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가는 정훈을 통해, 평범해지고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 정훈을 통해,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인식한다. 1천 65억 개의 하나인 개개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우리는 개개인이 바로 '원더보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원더보이'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