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목은 두 번째 편지의 제목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시적으로는 멋있는 제목 밑에 엄청난 전제가 있음을 알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서 유동하는 근대(현대)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을 읽고 나서 정확한 문장이 기억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전체적인 함의가 때때로 생각난다. 이 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갖고 있는 언어의 이중성이 있다. 근대 이후에 일어나는 사회의 문제점과 그 사회가 근대를 토대로 구축해 놓은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그런데, 유동하는 근대 혹은 액체 근대라는 말은 명암 50%에서 밝은 쪽으로 70%-80%로 치중해서 사회를 보는 느낌이다. 살기 편한 세상이지만 녹록치 않고, 풍요로워진 건 확실한데 사회 전체적으로 상대적인 박탈감 혹은 전세계적을오 절대적인 빈곤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그 비율이 더 많아졌다. 단순히 인구가 증가했기에 확률이 늘었을 뿐이라는 이유말고 더 근본적인. 그 이야기를 44통의 편지 형식으로 말한다. 심각하지만 웃으면서, 힘든 상황이지만 밝은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끔.
“오늘 확실하고 타당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내일은 전혀 쓸 데 없고 괴상하거나 유감스러운 실수처럼 보일 수 있다(p17).” 불확실한 현대사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애플이나 갤럭시 초기 모델은 이제 1990년대 초반의 무기같은 휴대폰처럼 느껴진다. 숫자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것을 익히면서 정보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있는 것들은 보지 못하는 디지털 장애. 그 속에서 생각을 바르게 세우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내가 TV광고를 보면서 혹~ 했던 것들이 진짜 매력적인지, 그 광고 모델 때문에 상품의 가치를 혼동한 것은 아닌지. 사회를 바라볼 때, 대중이 본다고 말하는 것들에 호도되어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바쁜 현대사회라고 그냥 넘어가는 가치와 행동들은 없는지, 세대의 틈이 벌어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짓지 않았는지 등. 다양한 주제를 자유의 흐름에 놓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정작 잊고 있던 ‘자유’를 밑바탕에 깔고.
잃어버린 것은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처럼 되돌릴 수 없는 가치라면 훨씬 어려운 문제지만, 그것 역시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그 여건을 마련하고 공동의 가치를 구축하는 것이 어려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각 편지마다 그 제목 아래에 놓인 모래시계. 어쩌면, 이미 지난 시간이라도 다시 되돌려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