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며 책 자체에 대한 서평입니다]
강준만이 이번에도 대선후보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김대중 죽이기'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하고,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으로 노무현 상승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의 통찰력이 그의 해박한 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미국사산책 17권을 써낼 수 있는 역량, 한국 근대사 산책(10권), 한국 현대사 산책(18권) 뿐만 아니라 매월 나오는 그의 책은 일반 사람이 책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출판된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많이 쓸 수 있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에 나는 강준만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편이다.
책이 한 권이 나오기 위해서는 적어도 30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의 통찰력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가 이번엔 안철수에 대한 책을 썼다. 점쟁이가 이번엔 안철수다. 라고 찍는 것처럼 이번에도 강준만이 찍은 사람이 되자 보자라는 식으로 볼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안철수를 둘러싼 유효한 비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안철수 현상'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분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면 적절한 책이라 생각된다.
정치적 경험, 약일까? 독일까?
안철수를 둘러싼 수많은 공격문구 중에 가장 유효하면서 공감을 이끄는 문구는 단연,
'안철수는 정치에 대한 경험이 없다'이다.
이 공격은 사실 정당정치에 익숙해 있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상당히 효과적이다. 저자 또한 그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당 지면을 그에 대한 반박에 할애한다.
우선 안철수의 말을 들어본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문 중 -
대선출마 한 달 전에 강준만 교수를 만났기 때문인지, 책의 내용에서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안철수 대선출마 선언문에 반영돼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연설을 들을 때 나는 저 한 문장이 부동 유권자의 마음을 좀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주장은 이어진다. 사실 어느 편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은 기반의 부재로 불안한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아무 의무도 없다는 말도 된다. 우리는 그동안 전 대통령들의 '챙겨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리를 감수해야 했는가. 우선 그의 출발점이 깨끗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전 정치권에 느꼈던 환멸을 씻어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본인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경우는 흔하게 있지만, 본인이 할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끌어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사실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은 그가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정통성이 그를 불러냈고, 박근혜는 아버지의 과업이 그녀를 전면에 나서게 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직 국민의 의지가 그를 끌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안철수를 원하는 이유는 어떤 것일까?
우리 정치에서 선거운동은 오직 하나다.
'저 쪽이 더 나쁜 놈들입니다. 여러분!'
그것 뿐이다.
국민들은 그 말을 믿고 여러번 그 반대진영에 투표했지만 결과는 항상 비슷했다. 언제부턴지 우리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정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김어준이 닥치고 문재인도 아니고, 닥치고 진보도 아닌 '닥치고 정치'라고 외치는 이유는 욕을 하든 옹호를 하든 우선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는 뜻이지 않은가. 그런 무관심한 사람들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사람이 안철수이다. 안철수가 나온다면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만 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기존 정치 문법에 대한 반향으로 나타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안철수를 기존 문법의 틀어 껴맞추려고만 하니 그들의 비판이 유효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나는 야권 사람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친 뒤 한국인의 정치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혐오의 대상이 정치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에 대한 분노와 박근헤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걸로 이 질문을 피해 가려고 한다. 이게 바로 안철수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숨어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게 내 생각이다. (p.60)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야당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 오직 현 정권 비판 뿐이었다. 국민적 지지를 얻는 성과에 대해서는 폄하하기 바빴고,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책만 연구하다 보니 일관성이라곤 없었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준 실망감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오직 여당 때리기에만 골몰했다. 진영논리는 정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우리는 진영논리로 싸워서는 안될 일까지 진영논리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여당이 돼서 추진했던 일을 야당이 돼서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안철수의 뜬구름 잡기
안철수는 대선출마 선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출마선언문의 한 문장일 수도 있지만, 안철수에게는 이 말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하다. 왜냐하면 안철수가 바로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의 뜻으로 세상에 나타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를 '증오시대의 종언'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할 가장 적절한 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런 식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라 '뜬구름 잡기'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의 복지정책과 대북정책, 경제정책들을 듣다 보면 구구절절 맞지만 저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비판자들은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의 견고한 '안'들이 현실정치에서 수백번 수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건전한 사고의 출발점을 바라는 것이다.
중립은 반칙
나 또한 '중립은 기회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 사회에 중립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황을 봐서 더 나은 곳으로 가려하는 기회주의적인 행태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안철수의 중립은 조금 다른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솔 알린스키가 1971년에 출간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 그 단서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100퍼센트 천사의 편에 있으며, 그 반대는 100퍼센트 악마의 편에 있다고 확신할 때 행동할 것이다. 조직가는 문제들이 이 정도로 양극화 되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상대는 기껏해야 60프로 잘못되는 정도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기존 정치인들이 그래왔고 그러한 믿음은 국민보다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지속될 것이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지배했던 이념 체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용기이다. 그 요건을 갖춘 사람으로 당파성을 띄지 않는 안철수가 적임임은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한 진보 진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당연히 중립일 수 밖에 없다. 유시민은 '도덕이 위기에 봉착한 시기엔 양비론이 설 자리가 없다'라면서 안철수를 비판했다. 하지만, 중립의 의미는 아무런 참여조차 하지 않고 뒷짐지고 너도 틀렸고, 너도 그르다. 라며 헛기침을 해댈 때의 나쁜 의미이지 한 사회의 리더로서 사회를 통합하려고 할 때의 중립은 아니지 않는가 싶다. 중립은 이념논쟁에서는 꽤 중요한 선택사항이지만, 이념을 초월한 가치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자리 창출이 이념만으로 되는 일인가? 지금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는 바로 이념을 초월한 리더인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끝없는 자충수
사실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비난 하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유효하지는 않다. 박근혜 지지자중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세울 논리가 그것밖에 없을까라는 비아냥만 듣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오직 구태의연한 방식의 공격만을 고수하고 정책은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야당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 오직 현 정권 비판 뿐이었다. 국민적 지지를 얻는 성과에 대해서는 폄하하기 바빴고,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책만 연구하다 보니 일관성이라곤 없었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준 실망감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오직 여당 때리기에만 골몰했다.
진영논리는 정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우리는 진영논리로 싸워서는 안될 일까지 진영논리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여당이 돼서 추진했던 일을 야당이 돼서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여전히 남은 의문들
여전히 남아있는 안철수에 대한 비판들은 수도 없다. 대표적인 것은 너무 여리다거나, 뜬구름 잡는 식의 정책만을 말한다던가, 스토리가 없는 후보라던가, 우유부단 하다던가 등이다. 강준만은 해당 기사를 일일히 스크랩해 올리고, 거기에 대한 반박을 조목조목 했다.
물론, 읽는 중에 좀 억지스럽고 선뜻 공감할 수 없는 주장이라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독자 눈높이에서 매끄럽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꼼수'에 대한 저자의 생각 부분은 개인적으로 못마땅하다. 물론 B급 언론이 메인에 들어설려고 해서 실패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결과론적이지만 맞았다. 하지만, 현재 의도적으로 외면되는 나꼼수의 '설'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는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나꼼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음모론' 또는 '말장난'이라고 치부하며 애써 무시한다. 그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언론이 바로 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저 개그콘서트 보듯 나꼼수를 B급으로 매도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안철수의 생각 보다는 이 책이 안철수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조금더 직설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돋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정의, 공정, 공생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저자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려서 옮겨본다.
"대중은 진보 세력의 사회 개혁론을 불안한 시서능로 바라본다. 그들에겐 '엄친아' 성공코드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개혁론을 '약자의 원한'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정의, 공정, 공생 코드와 더불어 '엄친아' 성공 코드를 지니고 있는 안철수의 개혁론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간다. 개혁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