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67 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변함없이 방위백서에 독도는 자신들의 땅이라는 내용을 명기했다. 독도 문제는 일본 정신의 근본적인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런 즈음에 만나는 독도 및 일본 관련 책이 하나 있다. 장성훈 선생의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이다. 이 책은 사무라이 정신, 가미카제 정신, 독도 문제의 진실을 밝힌 책이다. 알다시피 사무라이는 일본의 전(前) 산업시대의 군사적 귀족 계급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도(茶道)나 꽃꽂이 등 일본 고유의 예술을 탄생시킨 사무라이는 무력(武力)을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용기와 명예, 충성심 등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이상적인 집단으로 여겨져 왔다. 사무라이 정신이 거짓임을 밝힌 저자의 작업은 우상 파괴에 해당한다. 저자는 죽음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전쟁터가 아닌 집 안에서 할복 자살하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무라이들의 할복은 할복을 빙자한 참수형일 뿐이다. 문제는 그들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미화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고유의 것으로 날조된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서양의 기사도를 모방해 무사도 정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무사도라는 말이 사무라이 시대가 이미 끝난 뒤 미국에서 영어로 처음 소개된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사실 주군에 대한 무조건 복종이 강제되는 상황에서 의(義)와 명예에 근거한 행동이 나올 수 없다는 점도 사무라이 정신이 조작되었음을 알게 한다. 알려진 바와 달리 사무라이들은 비겁하다. 그들의 비겁함은 변명과 핑계로 목숨을 구걸한 A급 전범들의 구차함과 겹친다. 일왕제(천황제)를 무책임의 체제로 규정한 마루야마 마사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가미카제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 얕은 수(手)는 당연히 거짓이다. 실제로 가미카제 가운데 미 함정에 돌진한 숫자는 6%에 지나지 않는데 미군함정 30척을 침몰시켰고 120척을 타격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죽음을, 부처께 꽃을 뿌려 공양하는 것을 뜻하는 산화(散華)라는 말로 치장했다. 일본의 무책임은 전쟁 도발 등의 잘못에 대해 성의있는 반성과 참회를 보인 독일의 행동과 확연히 대비된다.
일본이 무책임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지난 2005년 이스라엘 정부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개관식에 홀로코스트 당사국인 독일을 초청했음에도 일본만은 초청하지 않은 것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2차 세계 대전의 가해국인 일본이 피해국을 자처하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이다. 피해국을 자처하니 일본 입장에서 반성이나 사과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일본의 주장은 억지와 생떼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독도 영유권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 있는 근거가 있“(196 페이지)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일본이 편입을 선고한 1905년까지 독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독도 문제는 왜구(倭寇)와도 관련이 있는 역사적 문제이다. 기록에 의하면 왜구 이전에 해도에 숨어살던 포작이라 불린 소규모의 해적집단이 있었다. 원래 양민들이었던 그들은 관청의 수탈을 피해 섬에 숨어 살며 불법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가끔 왜구와 결탁해 노략질을 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해상 지리에 밝은 그들을 왜군과의 전투에 활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적 얽힘이다.
이성계는 잔악한 왜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도(空島)작업을 벌였다. 본문에 따르면 1616년경 일본의 한 어부가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로의 출항을 허가받았다. 저자는 울릉도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했었다면 왜 그 어부에게 출항을 허가했느냐는 문제제기를 한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강변하는 것은 바로 그 어부의 출항으로 인해서이다. 물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 기록과 무관하다.
1904년 초 일본은 독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05년 2월 22일자로 독도를 다케시마라 칭한 뒤 시마네현으로 편입한다고 고시하고 이를 1906년 4월 대한제국에 통보함으로써 국제법상 독도가 자국 영토로 합법적으로 편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를 오래 전에 발견, 영유해 왔고 편입을 고시했으나 인접국으로부터 어떤 이의도 받지 않았기에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독도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1905년의 고시와 1906년의 통보는 1904년 8월 강압에 의한 한일협정서가 체결된 이후의 일로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는 쿠릴 열도를 놓고, 중국과는 센가쿠 열도를 놓고 영토 분쟁을 벌이는 일본이 유독 우리에게만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운운하는 것은 일본의 2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의 행태는 15명의 판사로 구성된 국제사법재판소에 한국 판사가 없는 점에 착안한 얕은 꾀에 불과하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을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국민이라 평했지만 저자는 일본인의 예의와 공손함, 교활함과 잔인함이라는 2중적 특성이 모두 소심함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타인의 시선에 놀랍도록 민감하면서도 타인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일본인의 특성은 2중성 자체이다. 일본인은 철저한 자기 포기와 감각의 쾌락에 두루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점에서도 2중적이다. 일본은 병적 기묘함을 지닌 나라이다. 물론 저자도 지적했듯 그들의 예의와 자제는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불굴의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3부 ’향기 없는 사쿠라 꽃‘과 4부 ’진한 무궁화 향기‘의 대비는 상징적이고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사업을 하면서 우리 민족 정도면 단결도 잘하고 상당히 좋은 면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역량도 지녔지만 지양(止揚)해야 할 점들도 많다. 저자의 의도는 사무라이 정신이 거짓이고 왜곡된 것임을 밝히는 데에 있지만은 않다. 일본이라는 타자(他者)를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을 말하는 것이리라. 결론부에서 저자는“독도문제 또한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독도 문제는 결국 사필귀정의 진리를 확인시켜줄 중요한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