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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차에서 풀려난 마음

글쓴이: 예스24에서 글쓰기 막은 지 여덟 해째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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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기차에서 풀려난 마음


 



  고흥에서 음성까지 아홉 시간 즈음, 다시 음성에서 고흥까지 아홉 시간 즈음, 아이들은 버스와 기차와 택시를 갈아타고 움직여야 한다. 어른도 만만하지 않은 길을 아이들은 참 잘 따라와 준다. 길이 막혀서도 아니요, 차가 없어서도 아니나, 오늘날 뻥뻥 잘 뚫렸다 하는 길이란 큰도시에서 다른 큰도시로 잇는 길일 뿐, 시골에서 다른 시골로 잇는 길은 거의 엉터리라 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이 뻥뻥 뚫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골과 시골은 앞으로도 시골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온 나라에 고속도로가 뚫리거나 고속철도가 놓여야 경제발전이나 사회발전이 아닐 뿐더러, 좋은 삶이나 즐거운 삶이 아니기도 하다. 좋은 숲을 누리면서 좋은 꿈을 키울 때에 좋은 삶이요, 즐거운 마실을 천천히 걸어서 다니며 즐거운 사랑을 오순도순 나눌 때에 즐거운 삶이다.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풀려난 아이들은 홀가분하다. 기차를 내리고 나서 아이들은 마음대로 달리든 걷든 뛰든 노래하든 할 수 있다. 한가위 버스와 기차라 하지만, 아이들이 저희 마음껏 소리지르거나 뛸 수 없다. 어른들은 고속버스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데, 아이들이 고속버스나 시외버스에서 아이답게 쉬거나 놀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손전화 기계를 들여다보든 술을 마시든 무어를 하든 한다지만, 아이들이 기차에서 아이답게 뛰거나 놀거나 노래할 만한 틈을 마련해 놓지 않는다.



  곰곰이 돌아본다. 여러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나 기차에서 어린 아기들은 똥이든 오줌이든 눌 수 있다. 기차에는 뒷간이 딸리지만 어느 기차에서도 어른이 똥오줌 누기 좋도록 시설을 갖추지, 아이들이 똥오줌 누기 좋도록 시설을 갖추지 않는다. 어린이 눈높이로 된 시설이란 어디에도 드물다. 곧, 어린이처럼 여린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장애인이 즐거이 누릴 시설이 없다고 할 만하다. 외국 손님을 헤아리는 안내글이나 안내방송이 있다지만, 외국 일꾼(그러니까 이주노동자)을 헤아리는 안내글이나 안내방송은 없다.



  어쨌든, 여덟 시간 먼길을 달린 끝에 아이들이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풀려난다. 마지막으로 택시 탈 일만 남는다. 이제 홀가분하게 뛰고 달리며 소리지른다. 아이들이 두 다리로 걷는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마음이랄까, 더는 몸을 옥죄이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랄까, 우리는 우리 가고픈 대로 간다. 우리는 우리 하고픈 대로 한다. (4345.10.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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