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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는 자체을 위해 살아간다

글쓴이: 낙화님의 블로그 |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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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위화/백원담/푸른숲




저자가 서문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는 책을 일독하고서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그 문구에 얽매어 소설을 읽으려고만 한 아둔한 독자의 눈 때문이다.




원제 ‘살아간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재 출판된 이 소설은,


늙은 소를 끌고 밭을 갈고 있는 푸구이라는 노인의 입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일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중국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이 한 인물과 가족사에 응축되어 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고 단조롭기까지 하다.


부유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가 노름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소작농이 되어 힘겹게 생활하면서 아들과 딸, 아내와 손자마저 잃고 혼자 살아남은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그 속에는 중국 근현대사가 함축적으로 녹아 있다.


중국 국공 내전 때 국민당과 해방군과의 싸움,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들과 관련한 갖은 고초와 가난으로 풀죽을 끓여먹으며 연명하였던 인민들의 참상까지.


푸구이의 삶에 담겨 있는 역사속의 사건을 담담하게 젊은이에게 증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각 독자들의 생각에 맡겨 놓았다.


따라서 보이는 내용 외의 숨은 의미를 찾는 노력은 부질없을 수도 있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인 『허삼관 매혈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일한 시대적 배경 안에서 줄거리만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근현대사 속 중국인들이 겪어온 시대적 아픔을 그리는 것이라고 보인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를 밝히지 않아도 일본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중국 소설 역시 특유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중국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중국 근현대사 속의 아픈 상처와 가난에 굶주린 국민들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독서의 쓸데없는 버릇 중의 하나가 글 속에서 교훈이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유일한 목적일 수도 없고 또한 굳이 그래야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읽는다는 그 자체만의 즐거움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니.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해서 칸 영화제에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영화감독은 과연 이 소설을 어떻게 스크린에 담아냈을까 궁금해지는 것은,


저자가 말했던, 그저 살아가는 자체를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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