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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비린 것에 대한 그리움

글쓴이: Rollercoaster |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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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문득 몇 달째 책꽂이에 꽂혀 있던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훈 작가의 책이다. 거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던 지라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책을 꺼낸 것은 아마도…


 



꺼낸 책은 소설과 산문이었다. 두 권을 앞에 놓고 어떤 책을 먼저 읽어볼까 망설이다가 『홍합』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잘 밤에 읽기 시작한 탓에 문기사와 승희네가 냉장창고에 들어간 부분까지만 읽고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하루 종일 딴 짓을 하며 놀다가 초저녁에 잠이 들었고, 저녁을 먹어야할 즈음에 깼다. 아무것도 안 먹기엔 허전하고 그렇다고 먹자니 부담스럽고, 고민을 하다가 홍차와 잼 바른 토스트를 먹었다. 먹으면서 읽던 소설을 다시 읽어볼까, 했는데 그다지 당기지 않았다. 그냥 멍청히 있고 싶었다. 해서 다운받은 영화를 내리 두 편 봤다. 보고 나니 잘 시간! 잠이나 자자며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안 온다. 초저녁에 너무 잘 잔 탓이다. 소설을 읽을까, 들었다가 옆에 있던 산문이 눈에 띄었다. 그래, 이걸 읽어보자!


 



사실은 읽다가 잘 줄 알았다. 어제도 그랬으니까-.-;; 근데 책을 덮을 때까지 잘 수가 없었다. 썩 당기는 책이 아니었는데 푹 빠져버린 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로 이미 그의 문체를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읽은 탓인지 그가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 사람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지난 번 거문도 갔을 당시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옆에 앉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조근조근 유머와 위트를 넣어가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그대로 책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읽은 책 중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와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두 권의 책 모두 바다 이야기다. 한데 『홍합』을 읽다 보니 역시 바다가 나온다. 또 『향연』에서도 그는 바다를 이야기 한다. 오호라, 그랬구나! 왜 그가 바다사나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는지, 추천사를 써준 공선옥 작가의 말이 무엇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나. 사실 그의 글은 산문이나 소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산문에서 그는 고향, 바다, 사람 이야기가 많았다. 소설에서도 그는 바다와 고향, 사람 이야기를 들려줬다. 『홍합』에 나오는 홍합공장의 아줌마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이더라. 또 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모두 섬에 사는 사람들이므로 꼭 알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한다. 하긴, 작은 섬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 것인가. 어쨌든 그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한창훈 작가는 공선옥 작가의 말처럼 여자 없이는 살아도 바다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그런 존재, 맞다.


 



소설가에게 소설보다 산문이 더 재미있다고 말하면 싫어하겠지. 그래, 싫어하더라. 한데 솔직히 이번에 읽게 된 소설과 산문을 두고 말하자면,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으나, 졸릴 때는 뭐든 읽거나 보더라도 재미가 없으므로 『홍합』읽던 부분 펼쳐 다시 읽는 중) 어쩌면 그의 말투며 그의 생각이며 그의 유머를 이젠 조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허구보다 산문의 이야기들이 그의 진심을 보는 듯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해서 주말, 먼저 읽고 있던 소설은 덮어버렸고 새벽이 밝아오도록 한창훈 작가의 '말'의 '향연'에 빠져 있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언제였을까? 한창훈 작가는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아시나요?^^). 『나는 여기가 좋다』를 펴내고 『채플린, 채플린』의 염승숙 작가와 동반 강연을 할 때였다. 그동안 한국 작가들에 관해(신인 작가는 모른다고 해도,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오래된(!) 작가들은 죄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사실은 한 편의 작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가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그 후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던 때였는데 그날 한창훈 작가의 강연을 들으며 진짜, 다짐을 했었다. 한창훈 작가가 『나는 여기가 좋다』 이전에 이미 많은 책을 낸 작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날 작가와의 대화가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아마,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밖에서 다들 웅성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제나 책이 많았던 내 가방, 그것도 모자라 항상 보조 가방을 들고 다니던 내 어깨가 가방으로 인해 축 처져 있었나보다. 그런 나를 보며 한창훈 작가가 말했다. 무거워 보인다며 들어주겠다고. 천생이 수줍음 그 자체인(^^) 나는 고개를 흔들었던 것 같고, 두어 번 괜찮다며 들어주겠다는 걸 사양하고 말았는데. 아.뿔.싸! (훗날 거문도에 가게 되고, 한창훈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게 되고, 이렇게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될 줄 알았다면 미리 친한 척 해둘 것을 그랬구나 싶어,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라니 괜한 자책을 나중에 했다지;)


 



암튼, 그런 일들이 『향연』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니 그의 다른 작품들이 다 궁금해지고 말았다. 책을 읽어줘야 하고 좋은 책 소개를 해줘야 하는 일이 내 일인지라 지금 읽어줘야 할 책은 산더미처럼 밀려 있고, 이렇게 한가하게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상선을 타고 두바이로 가던 길에 보았다는 별들이 궁금해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가 읽고 싶고, 그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가 궁금해졌고, 딸 단하와 화장실 앞에서 귀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그가 쓴 어린이 책 『검은 섬의 전설』이 궁금해졌다. 무릇 바다사나이라는 터프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말투가 어째 그렇게 다정할 수 있는 건지(물론 딸 앞에서 아빠들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소설 쓰는 한창훈'보다는 '고기 잡는 한창훈'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덩치를 가진 그가 어린이 책을 썼다는 게 왜 믿어지지 않는 건지.


 



잠을 다시 자기는커녕 오히려 확 달아나버려 멍 때리며 누워 있자니 공선옥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한창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바다를 만난다는 것이고, 드디어 우리가, 생전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의 끝에 사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랬다. 물에 빠진, 비린 것이라곤 잘 먹지도 못하면서도 한창훈 작가의 책만 읽으면 비린 것이 그리워졌다. 그리움은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라 그는 말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재주. 그의 작품을 하나씩 야금야금 읽어치우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었다. 그리고 읽은 책들 다 들고 날 잡아 사인 받으러 거문도나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그의 책은 자꾸만 거문도를 그리워하게 한다. 내 고향도 아닌데, 겨우 한번 다녀온 곳인데. 그나저나 아는 척하면 잘 방은 내주시려나. 바다가 보이던 그 방, 정말 맘에 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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