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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구를 촉촉하게 적셔주는【잠옷을 입으렴】

글쓴이: 30 Seconds To Mars ♥ |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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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읽었던 그 적지 않은 책들 중에 이제는 홀연히 사라져가버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됐을까 하는. 몇작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도우 작가의 이 작품만큼 절절하게 추억을 곱씹게 만드는 작품도 흔치는 않았던 듯 하다. 그렇다. 지금 난,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그 추억에 푹 잠기게 만드는 아릿한 성장소설을 한권 만나고 돌아오는 중이다.


 


신작로, 네잎클로버, 삼중담문고 등..기억 한켠에 잠재해(혹은 나에게도 낯설은) 있던 추억 속 단어, 장소, 놀이 등이 가득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나 역시 저절로 그때 그 시절로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많은 분들이 제목만을 보고는 음흉(?)한 상상을 하시는걸 목격했는데, 이도우 작가가 말하는 '잠옷'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1살 어린시절 이종사촌 수안과 입었던 디자인은 같지만 색이 다른 리본 달린 잠옷과 38살, 여전히 추억에 젖어있는 또는 헤어나올 수 없는 둘녕이 잠결에 잠옷을 입은 채로 밤거리를 헤매는 극적 수단으로써. 잠옷이란 매개는 그렇게 11살과 38살, 27년이란 시차를 뛰어넘어 한 곳에 존재하고 둘녕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둘녕이 수안에게 잠옷을 건넴으로서 둘의 우정은 기억 속에서나마 계속 되기도 한다.


 


소설 속 화자 둘녕을 만나는 시작은 이렇다. 갑작스레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리고 바쁜 회사생활에 시달리던 아빠는 둘녕을 시골 할머니댁에 맡기게 된다. 이모 내외, 막내이모와 삼촌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다. 아, 그리고 유년시절에도 어른이 된 후에도 둘녕에게 제일 중요한 인물로 각인되 있는 수안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 경우에는(친척 중 여자형제가 있을때) 두 가지 경우의 관계가 존재한다. 아주 친하거나 시기하거나. 나의 경우 외가,친가 할것없이 어디든 남자사촌들만 득시글거렸고 내가 유일한 친손녀이자 외가에서도 첫 손녀였기에 야수 속의 미녀(?)처럼 고운 대접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여자 사촌과의 우애같은건 전혀 낯설기만 하고, 남자 사촌들 속에서 항상 겉돌았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따랐던 사람이 있다면 9살 차이가 났던 막내이모 정도일까. 초등 1학년때 이미 고등학생이었던 이모를 손전등을 들고서 시골 밤길을 헤치며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르곤 한다. 한참 머리가 커버린 이모였지만 나도 퍽이나 철이 들었던터라 꽤나 잘 맞는 말동무가 되었던거 같다(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 다락방에서 막내이모의 일기장이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그 시절, 이모가 하는건 뭐가 그리 다 멋져 보였던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줄줄 꾀고 있었고... 책꽂이에 꽂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나 에밀 졸라, 헤밍웨이의 책 등은 언제나 내 눈으로 격하게 애무를 해주곤 했다. 읽어봤자 멋도 모르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꽤나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사람이 내 부모 내 형제가 아니더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막내이모였고 둘녕에게는 동갑내기 사촌 수안이었던 것이다. 둘녕의 입장에서는 얹혀사는 입장이라 어른들의 눈치도 봐야했겠고, 수안은 부모님 두분 다 계심은 물론 약한 몸으로 인해 어른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는 입장이라 둘녕의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주눅이 들만도 하지만 둘의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이 성장 해 나감에 따라서 점점 끈끈해지기만 했다. 서로의 그림자처럼, 바람이 불면 나무잎이 살랑거리듯이, 햇빛이 내리쬐면 나뭇잎이 그 빛에 영롱이 초록빛을 뿜어내듯이..그렇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사촌이자 성장의 동반자였다.


 


정신적으로 강한 유대를 형성한 이들은 어느 한쪽이 흔들리게 되면 나머지 한쪽은 꿋꿋이 버티는 버팀목이 되거나 아니면 둘 다 중심을 잃고 사정없이 바스라지게 되든 종 잡을 수가 없다. 수안과 둘녕의 성장 역시 그와 다를바 없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를 지나고 감성의 발달이 극에 달했을때는 바스라지는 낙엽만으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지 않던가. 그런 성장통을 좀 더 냉철하고 현실적이었던 수안이 겪게되고 그 모습을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둘녕이 고스란히 바라보며 애타하고 받아주게 되는 입장이다. 대신 아파 해줄 수 없음에 마음 졸이는 둘녕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는 시선이 교차한다.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성장의 바람 안에서 이들이 겪어가는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일들은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아이들에게서 전해져오는 그 바람이 너무나 쓸쓸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젤까.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데 내던져진 듯한 그 흔들리던 소녀들의 감성이 뭉근하게 전해져 온다.


 


 





 

나의 유년 시절? 잠옷을 대신하는 전천후 무릎 나온 내복의 추억뿐.


 


잠옷? 그런건 안 키웠다. 무릎 나온 무늬내복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시장바닥을 누빌 때면 좌판에 진열되어 있는(시골 시장이 뭐 거기서 거기지) 잠옷들에 시선과 정신을 쏘옥 빼앗기어 침을 질질 흘리며 사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하지만 사주면 뭐하나.  이미 나는 겨울엔 무릎 나온 내복, 여름에는 츄리닝에 길들여져 있는 아이일 뿐이었는데. 입고 벗고 갈아입기 귀찮다는 이유로 언제나 옷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만 했던게 그 시절 잠옷이었다. 성인이 되고? 원피스, 파자마 할 것 없이 잠옷에 열광했다. 입고 벗고의 귀찮음을 떠나 잠은 편하게 자야한다는 주의로 바뀌었고 원피스잠옷은 나름 시원해서 좋았고 파자마잠옷은 편하다는 이유로 즐겨입기 시작했다. 심지어 약속 없던 휴일에는 하루종일 잠옷을 입고 생활 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았던, 편했던 시절을 떠올리라면 무릎 나온 내복에 소매 끝에 때가 꼬질꼬질 끼어있던 그때이다. 내복을 입고 무릎걸음으로 하도 방바닥을 기어다녀서 종래에는 무릎 부분이 금새 너덜너덜 해지고 말았던 내 몸의 방한을 어느 정도 책임(?)지고 편함을 주었던 그 시절 한겨울, 내복의 추억...떠올려줘서 고마워요.


 


 


 


사실, 이도우 작가의 이번 작품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많은 분들의 반응처럼 나 역시 의외였다. 하지만 그 특유의 감성만은 여전하다. 단어 하나, 행간마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듯한...그렇다고 달디단 사탕처럼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침샘을 고이게는 하지 못하지만 대신 내 안구의 촉촉함은 보장하는, 그렇게 감성에 노크를 마구 해대는 소설이다. 작가의 이름만 들으면 남자야? 싶지만...이도우 작가는 확실한 여성이 맞다. 글을 보면 안다. 그 쓸쓸하고도 촉촉한 물기 어린 글은 절대, 남자의 글일 수가 없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또 몇 년을 그렇게...기다려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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