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입에 발린 소리’이다. 그 다음은 ‘아까 한 소리’. 똑같은 소리 두 번 하면 바로 잔소리로 듣는다. 나를 칭찬하는 말이라해도 똑같이 두 번 하면 진심으로 안느껴진다. ‘입에 발린 말’ 만 하는 사람은 싫어하다 못해 증오의 감정도 느낀다. 어쩌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은 곧 모두에게 지옥 문이 열렸다고 봐야 한다.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는 책을 읽은 이유다. 대체 왜 그런걸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또 왜 그렇게도 입에 발린 말을 싫어하는 것일까. 심리가 궁금하던 차에 이 책 소개글을 보았다.
나의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 말들,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 책은 말 속에 담긴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상대방과 나의 진심이 만나도록 해 줍니다.(출판사 책소개)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목차를 펴서 ‘입에 발린 말’ 또는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게 있는지 부터 살펴보았다. 똑같은 표현은 없지만 그나마 2장, ‘무조건 YES라는 말에 속지 말 것’, ‘칭찬에도 의도가 있다’ 부분에 내가 원하는 내용이 나올 것 같다. 먼저 읽어본다. 내가 찾던 딱 그 내용은 아니지만 98쪽, ‘칭찬에는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에 나온 얘기는 공감이 간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99쪽, ‘격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내용은 부모나 선생님, 어디서든 선배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칭찬이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는 하지만 개인의 자발성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는 부적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동 중심 놀이 치료에서는 칭찬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며, 칭찬보다는 ‘격려’를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칭찬과 격려는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칭찬은 결과에 초점을 두는 반면 격려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격려에는 가치 판단이 배제될 수 있고, 언어적ㆍ비언어적인 격려가 모두 가능하다. 예를 들면, 인형 머리를 예쁘게 빗어 주는 아이를 보고 "와~ 예쁘다. 잘하는구나."라고 한다면 칭찬이고, "인형 머리를 어떻게 빗기는지를 잘 알고 있구나."라고 하는 말은 격려에 해당한다.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호감을 사려고 같은 활동을 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격려는 결과에 따라 판단하기보다 아이의 능력을 반영하는 대화법이다. 운동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 "힘내라!"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경우도 격려다. 이러한 격려 속에는 운동을 하는 선수와 같은 마음이 되어 선수가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켜보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99p.)
책에는 오해와 상처를 부르는 말, 남자와 여자의 말, 말 실수와 말 유희, 표정과 몸짓으로 하는 말에 대해서 나온다. 공저자 중 한 사람이 언어치료학을 배웠기 때문이겠지만,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설소대 단축증Ankyloglossia’의 원인과 치료 방향, 말을 더듬는 ‘유창성 장애’ 의 원인과 치료 방향에 대한 내용도 읽을 수 있었다.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애초에 내가 딱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말 속에 담긴 심리에 대해 심리학 전공자가 정리해둔 내용을 간단히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저자도 아니고 저자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은 더더욱 아니다. 이 말을 왜 하냐면, 나는 책이라는 결과물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는 ‘독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내가 저자가 책을 쓴 과정을 지켜보며 그 과정에 초첨을 맞춰 격려를 해 줄 입장이라면 평점을 더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정말 출판사 소개 글처럼 ‘나의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 말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말 속에 담긴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상대방과 나의 진심이 만나도록’,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랬던 독자이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그 책임이 저자에게 있는가 독자에게 있는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는 내가 여전히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모르겠고, 또 상대방과 나의 진심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중간 평점을 주었다.
나는 심리학과 언어치료학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이 뜻밖에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이 점, 내가 혹시 심리학이나 언어치료학을 배우러 대학원에 간다면 어떤 공부를 하게 될 것인지 책을 통해 알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