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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이름의 살인

글쓴이: 오호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로다 |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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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 아래는 판잣집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었다. ‘큰대문집’이라는 대폿집이 있었고, 구두수선을 하는 아저씨의 창고 같은 집도 있었다. 백양메리야스라는 간판의 속옷 가게도 있었는데, 거의 30여년이 지난 지금, 유일하게 그 가게는 ‘BYC’란 이름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그게 전부다. 내 유년시절 남아있던 기억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것이. 이제 그곳은 전부 다른 건물들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판잣집에서 살아가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어느 날 화재로 살아가던 터전을 잃어버린 구두 수선공 아저씨는 지금도 구두 수선을 하고 계실까. 아니면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 집이 있다. 주위에 있던 집들은 모두 3~4층 짜리 단독주택으로 변해버렸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50년 전 지은 그대로 한옥이다. 측간이 있어 똥을 모을 수 있고, 작지만 마당과 연못도 있다. 부뚜막도 그대로다. 물론 장작을 태워 밥을 짓는 구조는 아니다. 대신 연탄을 때워 밥을 했고, 물을 데웠다. 지금은 너무 낡아 사용할 수 없지만.


 


《신과 함께》는 오랫동안 집을 지켜온 가택신들. 우리나라의 전통 신들이 주인 할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저승차사들과 대결을 벌이고, 재개발로 집을 철거하려는 용역업체들과 싸운다. 집의 가장을 수호하는, 주로 대들보에 깃든다고 알려지는 성주신과 부엌과 불씨를 지키는 조왕신, 측간 즉 변소를 지키는 변소각시 측간신 그리고 집터를 인간에게 허락해주고 재복을 내리는 터주신(철융신) 등이 힘을 모아 저승차사, 인간들과 대결을 벌인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들의 탐욕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집을 부수려는 모습에 분노한 저승차사들이 가택신들과 힘을 모아 집을 지키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원래 이 둘은 서로 다투고 힘을 겨루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 땅에서 대대로 인간들과 함께 살아온 가택신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며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고, 가치를 따지는 무참한 시대에 전통은 버려야 할 악습이 되어버리고, 오래된 것은 곧 없애야 할 것이란 등식이 정당화된다. 그리고 함께 살아왔던 모든 것을 바꾸려 한다.


 


무엇이 진정 인간다운 삶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며 매일매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화려함과 풍족함 속에 정작 인간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처절한 극단이 만들어내는 비정함 속에, 우리는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고 무엇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내 유년시절이 생각났고, 나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벗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판잣집과 싸구려 불량식품, 떡볶이, 덤블링, 딱지가 떠올랐다. 가난했지만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던 그 때가 생각났다. 눈물 나도록 그리운 시절이 스쳐지나갔다.


 


진보와 발전, 변화와 혁신은 분명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겉모습을 바꾸기 위해,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 오랫동안 지켜왔던 소중함마저 함께 묻어버린다면, 그땐 무엇이 보상으로 주어질까.


 


작가는 책을 통해 과연 우리네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전통과 소박한 이웃의 정이 사라진 지금, 우린 행복한 것인지 묻는다. 대답하기 차마 어려운 슬픔이다.


 


이제 우리 집을 제외한 주변에 가택신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우리 집에만 가택신들이 살아가고 있다. 측간에 들어가 똥을 누기 전, ‘에헴’하며 사람이 들어감을 알리고, 부엌에서 국을 끓이며 조왕신의 알뜰살뜰함을 함께 배운다.


 


대들보 위에는 성주신이 우리를 바라보며 가정의 화목함을 빌어주고, 안방엔 삼신 할머니가 인자한 얼굴로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지키는 문왕신, 곳간을 지키는 업왕신 등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모르겠다. 언젠가는 우리 집도 철거하고 무지막지한 콘크리트와 벽돌로 꽉 막힌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택신들도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더 이상 어른들이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장독대를 지키던 철융신도 떠나겠지. 내 아이들은 성주신과 조왕신, 측간신을 알 수 있을까.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수많은 집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신들이 갈 곳을 몰라 떠돌고 있다. 그런 진보, 그런 발전이라면 더 이상 필요없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귀신들도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천안함 좌초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 분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하지만 난 그 분들과 함께 3년 전 용산에서 불에 타 숨져간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을 기억하려 한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살인으로 희생된 그 분들을 기억해야 난 비로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많은 울림과 슬픔, 그리움을 전해 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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