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에 한국사를 담을 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인지, 우리 내 역사가 그리 간단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점례는 일제시대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명하기위해 일본 주재소 주임에게 몸을 받쳤다. 그녀 본의는 아니였으나,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주임의 폭행을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잠시 소원했던 주임도 그녀가 아들을 낳자 더욱 점례에게 잘 해 주었다. 그러다 몇일이 지난 후 밖이 소란스럽기도 하고 이틀 밤낮을 닛본도를 가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주임은 어느 날 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자신의 곁에 찾아오지 못 하고 남의 눈치만 보던 어머니가 달려와 이제 어떻게 살 것이냐? 이 집이라도 잘 지켜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점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아이의 젖을 물리며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장에 나선 그날 운명의 남자를 만난다. 국밥집에서 자유가 왔으니 밥 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남자와 국밥집 여자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집에 돌아온 점례는 외갓집의 큰 어른인 큰이모를 만나게 된다. 부자였던 큰이모는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며 아이를 떼어 놓고 자신을 따라 나서라고 했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도맡아 하는 큰이모의 명령이니 혼자 살 수 있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못 하고 아이를 놓고 새벽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모 집에 당도한 점례는 험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모부의 손님들에게 술상을 내 오는 일이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술상을 드려 놓는데 한 남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그때 까지 그런 일이 없었던 점례는 이상한 사람도 다 봤다는 생각한다. 그 모습을 보던 옆에 식모가 이상한 눈치를 보내고 나서야 그가 이모가 뽑은 자신의 남편인 줄 알았다.(그는 시장에서 점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준 그 남자였다.)결혼식은 빨리 진행 되었다. 첫 날 밤을 치르며, 점례는 혹 자신이 처녀가 아닌 것을 남편이 알아 채지 않을 까 걱정 하였지만, 오히려 남편은 점례가 생각했던 걱정거리를 다복의 상징으로 생각하며 예뻐 해 주었다. 그렇게 점례는 생애 가장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깐. 다시 점례는 역사의 소용돌이 휘말리게 된다.
책방에서 조정래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책이다. 작디 작은 책 한권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집약해 놓은 황토는 이름처럼 질곡진 삶을 산 김점례라는 한 여인을 통해 그려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 말이 되는 것인가? 의문을 품을 정도로 점례라는 여인의 삶은 기구하다. 여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치도 않은 임심을 하게 되었고, 그 책임을 가지고 있던 남자들은 모두 자신의 만을 생각하며 떠나갔다. 죽고싶은 마음을 아이를 통해 삭여내는 과정을 보면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분노를 느낀다. 언제나 느끼는 조정래의 소설 속 여인들의 희생이 힘 없는 한국을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