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괴짜 사회학 - 수디르 벤카테시

글쓴이: 마음을 보는 눈 | 2012.03.23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괴짜 경제학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경제학 책인데도 불구하고, 도표나 숫자, 공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제도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긴장감과 소설적인 반전도 있다. 게다가 스티븐 더브너는 아마 저널리스트로 기억하는데, 글을 구성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대단하다. 경제학자인 레빗이 소재와 논리를 제공했다면, 더브너는 이야기 구성 담당이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공중으로 띄어 올리고,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고, 가슴을 철렁이게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저자의 후기를 보니 괴짜 사회학 스티븐 더브너가 그의 글쓰기 능력을 보태어 같다. 장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긴장감과 흥미가 바래지 않는다. 사실 괴짜 경제학 특별한 감흥으로 읽은 나는 책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구성을 내심 기대했으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의외성과 독특함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괴짜 경제학과는 달리, 괴짜 사회학은 마치 한편의 다큐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생생함과 진지함으로 독자를 붙들어 놓는다.


 


저자는 빈곤을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자인데, 내용과는 별도로 가난, 빈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 가난은 되물림되는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의 영원한 주제이자 정치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책에서도 저자의 주된 관심사는 가난이다. 물론 상황이나 환경은 조금씩 달라도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주된 관심사이다. 그럼 해결이 어려운 걸까? 정말 문제가 뭘까?


 


우선 가난은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이 있다. 절대적인 가난은 먹고 입고 거주하는 문제에 해당한다. 미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고 우리나라도 2 불을 넘어섰다. 절대적인 가난은 벗어난 국가경제 수준이다. 실제로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이 있을 있으나 극히 소수다. 그렇다고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저개발 국가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의 아이가 아사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가격안정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도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적 빈곤이다. 다른 사람보다 가난하다는 , 미래에 어떤 경제적 어려움이 닥칠 있다는 불안, 아이가 나와 같은 빈곤에 시달릴 것이라는 걱정,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일상의 행복을 앗아가는 원인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빈곤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공감하는 비율이 전체 국민 99% 이르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더구나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로 지금의 세대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고, 정작 본인은 노후에 자식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샌드위치 세대들이라는 것이다.


 


벤담의 공리주의에 의하면, 부자인 사람에게 1천만 보다 가난한 사람 사람에게 백만 원이 효용가치가 높다면, 부자의 돈을 가져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전체의 행복을 증가시킬 있다. 그것이 공공의 선이라는 얘기다. 물론, 현대에 있어서 불법적으로 강탈하면 범죄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세금이나, 경제적 혜택, 복지 등으로 시행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특히, 늘어난 세금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부담이 되는 의료, 교육, 노후에서의 공공성을 확대한다면, 현재 조금 벌더라도 소득을 자신의 행복추구를 위해서 소비할 있게 테니 물가안정이나 임금인상이 중요한 아니라 경제적 소외자가 될지 모른다는 위험에서 구제해 주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라 하겠다.


 


반대론자들은 세금을 걷고 복지를 확대하자면 으레 경제가 위축된다. 투자가 줄어든다. 기업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하자는 얘기냐?’ 라고 호들갑을 떠는데, 가장 살기 좋다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에서 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따라 하려는 모델인 미국은 불행하고 가난한 국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드는 나라다. 그리고, 장하준 교수가 얘기했듯이 복지는 비용이 아니다. 어디 하늘로 날라가거나 없어지는 돈이 아니라, 전체 국민에게 나라가 돈을 걷어 공동구매를 해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논리 아주 좋다. 진보 쪽에서도 사람들에게 절제의 미덕을 강요하기 보다는 경제적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쪽으로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여튼, 미국에서도 국민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시기는 1945 이후 30~35년간이라고 한다. 시기는 미국에서 중산층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상위 1%소득 비율도 전체 소득의 9% 불과할 정도로 부가 골고루 분배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대공황과 2008 금융위기 때는 상위 1% 소득비율이 23% 달했으며,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하고, 복지는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가난은 구제할 있다. 우리가 현재 놓여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경제시스템 그것을 결정하는 법과 제도를 고쳐나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세력에 투표하면 된다. 선거일도 얼마 남았으니, 귀찮다는 생각 말고 선택해야 한다. 한번의 선택이 우리가 앞으로 경제적 공포의 노예로 사느냐, 아니면 든든한 경제적 안정을 배경으로 행복을 추구하느냐가 달려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효율이 극대화 된다”, “부자라고 세금을 걷는 것은 시장주의다:” 이러한 논리를 펴는 뜨거운 심장을 가지지 않은 파란 피가 흐르는 시장만능주의를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제어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자본주의를 위해서 정부가 간섭해 것이 바로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 것이다.


 

전체목록보기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