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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우리는 추억이 있기에 살아간다

글쓴이: KEEP ON DREAMING GIRL |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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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의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사람의 기억은 굉장히 잔인한 사건을 미화하기도, 굉장히 아름다웠던 사건을 기억하고싶지 않은 사건으로 만들기도 한다. 첫사랑에 대한 그 대표적인 예인데, 아름다웠던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람도있다.(내 경우엔 후자) '건축학개론'은 이처럼 누구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영화다. 로맨스 영화이기 이전에 추억에 관한 영화랄까.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추억을 상기시키는 빛바랜 사진처럼, 한없이 감성적이고 볼수록 아련하다.


* 약간의 스포일러 있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오간다. 대학교 1학년때, 우연히 한 동네에 사는 것을 알게되고 건축학개론 과제를 같이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는 어린 승민(이제훈)과 어린 서연(수지)의 이야기와 15년 후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갑자기 찾아온 서연(한가인)의 집을 지어주는 승민(엄태웅)의 이야기. 두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완성되는 것은 '첫사랑의 감정'과 '집'이다. 영화가 진행되고 집이 완성되면서 그들의 알 수 없는 감정도 쌓여가지만, 아쉽게도 그 끝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가 유달리 좋았던건 그들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어떤 뜨거운 일탈을 시도하지 않고 그저 정해져있었던 자신들의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 해도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가 아닌이상 그렇게 호흡이 긴 사랑을 이어갈리 없지 않는가.(심지어 이 영화의 호흡이 더 길다. 무려 15년!) 이 현실적이고도 씁쓸한 결말에 깔려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추억이 가지는 힘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추억은 단지 서연과 승민만의 풋풋한 사랑의 기억만이 아니다. 서연이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 집에서 쌓았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로 만드는 집에도 고스란히 남아있고, 승민이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만들었던 아픈 추억 역시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록 그들이 같이 건축학개론 과제를 했던 동네는 재개발이 들어가지만 그들의 기억은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고, 그들이 함께 듣던 CD플레이어는 단종되어 버렸지만 그 노래만큼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그들이 함께있는 동안 그들을 변화시킨다. 비록 큰 변화가 아닌 사소한 변화이지만, 승민이 어머니에게 조금 더 살갑게 대하게 된다던가, 서연이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되는 변화말이다. 그들이 15년전 했던 그 사랑이 (쌍년이라고 그녀를 회자할지라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가능했던 변화가 아닐까. 





실제로도 엄태웅-한가인 커플보다는 이제훈-수지 커플의 이야기가 참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던 엄태웅-한가인커플의 이야기도 가슴에 콕콕 박히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는 단지 그들이 90년대 대학생을 연기해서, 추억의 노래가 삽입곡으로 쓰여서 나오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 사랑, 그 풋풋함에 대한 향수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이에 상관 없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물론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있다면 영화는 더더 깊은 여운을 남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디지털 세대...OTL)





추억은 아무 힘도 없다고 했던가? 확실히, 영화에서도 추억은 현실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추억은 추억으로 아름답게 간직하기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가슴 속에 간직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때문에 사는것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어렸을때의 사진이 모아져있는 앨범을 버리지 못하고, 아무리 못나온 졸업사진일 지라도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승민과 서연이 다시 한 번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추억이 있기에 살 수 있는 걸지도...



@

1. 트위터에서 본 인상적인 감상평. <건축학개론> 여성 감상평.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쌍년이었다'(@happydada)


2. 이 영화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만큼, 여운이 기네요. 심지어 영화 본 지 꽤 된 지금까지도 이 영화 덕분에 다른영화를 못볼지경 ㅠㅠ 특히 삽입곡으로 쓰였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영화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였지만 영화를 보고난 지금까지 주구장창 듣고있네요..ㅠㅠ


3. 이제훈의 연기는 정말로 정말로 인상깊고, 수지는 예뻐요............연기하는것도 이쁨 ㅠㅠ '드림하이'때 보다 더이쁨 ㅠㅠ 어쩌면 이야기가  승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걸 수도 있지만. 결론은 수지짱!!!!


4. 엄태웅이야 뭐 항상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고. 저에게 가장 큰 걱정은 '해를 품은 달'에서 연기력논란 받을 만했던 한가인이었는데 의외로 이 영화에서는 딱 한장면 빼고는 무난하게 느껴졌네요. 


5.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깨알같이 내주위에도 있다는 것도 재미중에 하나. 특히 납뜩이(조정석)같은 친구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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