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존에 책 이야기를 하는 책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목적이 분명하고 차별화 되었다. 저자는 경제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 그 수단으로써 책도 예술도 역사도 가져온 경우이다. 경제학자들의 서재엔 어떤 인문학 서적이 있을까, 하는 보편적인 소개를 예상 했지만 그건 짧은 생각이었다. 굉장히 효율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을 적용했다.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다.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 중 가장 알차다. 며칠 전에 아이가 ‘기회비용’이 무슨 뜻이냐고 설명해 달라고 해서 대충 간단히 답을 해줬는데 왜 이 책처럼 설명해주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책에는 분식회계, 포획이론, 한계효용 같은 경제용어 100여 가지가 재미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정말 재미나게 넘기다 보니 어느새 경제학 입문서 한권을 독파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과학자가 주장하는 기획독서를 실천해 보려고 이번엔 경제학자가 말하는 인문학을 살펴본 것이었다. 한번 읽었다고 서재에 꽂아둘 것이 아니라 경제학 사전처럼 곁에 두고 자주 꺼내어 보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경제학이 어려운 학문이 아니고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분야가 아니라 주장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실생활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경제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경제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이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많아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보면 경제학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여 저자는 인문학을 빌어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경제학에 흥미를 갖고 그 속에서 인간의 모습과 삶의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궁극에 경제학이 은행원이나 금감원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학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해법이자 우리의 본 모습이 투영된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 듯 하다.
저자가 맨 처음 제시한 경제는 우리 역사의 시초인 단군신화였다. 대체로 건국신화의 주인공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정당성을 천명하는데 반드시 경제문제를 거론한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바람과 비, 구름을 주관하는 주술사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온다. 이들은 모두 농업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날씨를 관장하는 역할이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활동인 농사를 번성시키기 위해 온 사람인 것이다. 농사는 분업을 촉진시켰고 분업은 신분제 사회의 배경이 되었다. 지배계층은 오늘날에도 경제관련 공약으로 피지배계층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는 정치의 다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밖에도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의 눈에서 ‘기회비용’의 개념이,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여행에서 ‘매몰비용’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외양간 청소에서는 ‘절대우위’와 ‘비교우위’가 설명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병사의 이야기는 ‘한계 원리’와 ‘한계비용’을 설명하는 사례로 훌륭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도 과거 역사 속에서 이미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은 내가 경제에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인지 놀랍기만 했다. 저자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18세기 영국의 무역위기와 같다고 보았다.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은 두 나라간 무역 불균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편 무역을 통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영국이 아편을 생각해 낸 것은 무역상의 이익이 중국으로만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바로 2008년 금융위기도 중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이었다. 미국은 과거 80년대 일본이 지금의 중국과 같을 때 일본의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끼리 엔화를 절상하는 담합을 시도했다. 위안화 절상을 위해 미국이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을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중국은 세계 제 2의 강대국이 되어 지들끼리 하는 협상을 가만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2001년 미국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과 최근에 일어난 AIG 사태-2009년 회생의 목적으로 정부에서 받은 공적 자금을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로 지급-는 그 깊숙한 배경에 프랑스 혁명이 거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건 모두 경영진에 대한 부당한 보상금 지급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영진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있지도 않은 계약을 했다고 이윤을 부풀린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촉발되기 전에 미국 은행의 경영진과 꼭 같은 네케르라는 은행가가 엔론 사태와 동일한 분식회계를 사용했다. 쉽게 말해 회계장부를 흑자로 사기쳐서 외려 귀족들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조성한 방식이다. 프랑스 왕실이 몰락한 이유는 미국은행처럼 단기간에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이는 꼭 미국과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시행착오는 아닌 듯 하다. 큰 돈을 만지는 1%에겐 양날의 검처럼 부여되는 운명의 기회가 아닐까.
책을 읽다보니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잘 한 일도 있었다. 일본은 주인 없는 산림으로 분류된 산림을 민간에게 소유권을 넘겨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소유권이 없는 공유지, 공유자원이 과다소비로 인해 고갈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조선의 산림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해 황폐화된 우리 산림을 복원하는데 기여한 일이 자기네 이익을 위한 발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겐 다행인 일이었다.(공유지의 비극은 꼭 다시 써먹고 싶은 용어이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문학 속에서 인물들이 경제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때 더 신명나는 듯 했다. 문학이 경제학의 나래를 펼치는 상상마당이라고 했듯이 나 역시도 문학 속 경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저자의 해석이 다른 경제학의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문학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과 양키>에서는 카멜롯의 아서왕이 다른 왕국의 대장장이와 물가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실질 GDP와 명목 GDP를 비교 이해하는 장치로 소개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베르테르가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시간비일관성’의 문제로 연결 짓는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는 약혼녀 아들과의 결투를 ‘게임이론’과 ‘내쉬균형’을 설명하는데 활용한다. <레미제라블>의 교훈은 ‘넛지’의 개념으로 정리한다. <좀머씨 이야기>와 라인강의 기적을 말하는 부분에선 독일 경제발전에 날개를 달아준 결정적인 사건이 한국전쟁이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독일은 몇 배로 수출을 하게 되어 경제가 안정된 것이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이성, 감성적으로 모두 이해시켜 준건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모질게 만든 건 재산세, 다름 아닌 세금이었다고 분석한다. 세금을 내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고 얼마나한 부담인지 사실 돈 없을 때 때려 맞아 보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밖에 공연표가 항상 남아도는 이유와 미술관에서 그림을 모두 전시하지 않는 이유, 왜 푸치니의 오페라는 언제나 볼 수 있는지, 공연예술 포스터가 노리는 효과는 무엇인지 등의 문화예술적 측면을 경제논리로 설명한 부분도 유익했다.(상식적인 면에서) 마지막 장에 우리도 애덤스미스 못지않은 정약용 같은 경제학자가 있었으며 민주주의는 금권선거에서 발전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맨 마지막 장이 ‘경제학자들에게도 윤리 강령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알다시피 경제학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방하는데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영학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세계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역시 세계적인 기업의 이사직이나 자문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고 찔러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이 사실을 숨기고 -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 해당기업이 속한 분야에 대해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어찌 보면 뒤로는 돈과 명예를 알뜰히 챙기면서 앞에서는 공익을 위해 세금을 내자고 하는 꼴이다. 경제학자들이 월스트리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금융위기를 부추겼다는 지적은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라는데 동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오늘날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인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다. 저자는 이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배경을 돈을 빌려주는 이유에 대한 개념이 일찍부터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돈이 없어 실현을 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유대인은 돈을 빌려주고 그 사업이 더 큰 돈을 번다면 채무자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업은 그 어떤 분야보다 사회구성원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유대인의 사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오늘날에는 어떤 부패와 불공정에 연루 되었는지 믿을 수 없으나 분명 최초의 사고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남는 돈, 아니 없는 돈이라도 빼돌려 한 푼이라도 내 수익으로 불리려는 파렴치한 사고를 가진 금융인들이 오늘날 돈 가지고 돈 굴리는 권력을 이용해 열심히 욕심 부리지 않는 대다수의 서민을 얼마나 궁핍하게 만들었던가. 사회전체의 후생과 복지, 경제 전체의 활성화를 위해 금융은 몸 안에 흐르는 피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금융일을 맡게 되는 사람은 자기 몸에만 피를 수혈하거나 피를 뭉치게 하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위험인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는 경제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 아주 유용한 시간이 되었다. 역사와 문학, 예술과 철학속의 경제는 우리가 발견하고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경제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평소에 ‘경제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효율적이고 계산이 정확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딘가 씀씀이가 크지 않아 밥 한번 안사는 사람이라는 뜻도 없지 않다. 이번 기회에 경제적인 사람에 대한 의미를 재정립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인간은 원래 경제적 성향과 본성을 타고 났는데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더 많이 이해하고 깨우친 사람이므로 살아가는 지혜가 더 풍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사람은 결코 짠돌이나 짠순이가 아니다. 경제 아닌 모든 분야에서 번득이는 해법을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일 것이다. 시간대비 성과를 효율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마도 인생 전체에 대한 지혜의 결과물이 다양한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인생을 진하고 깊게 사는 것이므로 가끔 짠 맛이 느껴질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럴 땐 우리네 피도 눈물도 모두 진하고 짠 것이니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면 되겠다. 그러니까, 짠순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보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 욕은 아니지만 우린 바보인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그러므로 짠순이에게 짠순이는 욕이 아닐 것이다. 단지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짠순이인지 몰랐다는 것 만이 중요하다. 이제 알게 된 이상 나는 짠순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겠다. 아니 누가 좀 나를 짠순이라 불러준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