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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한밤의 아이들

글쓴이: 나,비가 내다보이는 작은 서재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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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김연수 Time이다. 전작 읽기를 하고 있는, 그 중에서도 신간이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한 남자, 김연수다. 이번에 그가 <원더보이>를 들고 나왔다. 책을 읽으며 그의 취향과 목소리가 느껴졌다. 꾸부정한 자세에서 수줍게(약간은 어눌한 듯) 말을 건네는 그, 약간은 주진우 기자와 닮은 듯한 그가 내내 느껴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살만 루슈디= 원더보이


그가 표나게 애정하는 작가(품)이 셋있다. 첫째가 2006년 최고의 소설로 손꼽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둘째가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마지막이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이다. 초반을 읽다보면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이야기의 설정은 포어, 제재는 루슈디다. 우선 포어의 실험적인 타이포그라피(행간 파괴, 이미지 삽입 등)와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9살 오스카란 인물 설정이 그렇다.


 


또한 열 다섯살 정훈이는 어느날 야채를 싣고 집으로 가던 중 아빠의 트럭이 사고를 당하고,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얼굴은 '우주비행사처럼 밤거리의 불빛들을 향해 나아가던 그 옆모습이었다'. 사고 후 정훈이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한밤의 아이들>의 주인공인 살림 시나이와 같다.(인도의 독립 때 태어난 1001명의 아이들은 제각각 초능력을 갖고 있다. 이 소설에서도 미친 쌍둥이와 이만기가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김연수 작가가 평소 하고 싶었던 실험적인 소설을,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차용해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약간의 실망, 그리고 흥미를 느꼈다. 이런 제재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아홉살 인생, 9.11을 넘어서다


http://blog.yes24.com/document/1532461


 


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


이 도저한 이야기에 점을 찍을 뿐


http://blog.yes24.com/document/5295584


 


 


15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4년, 그러니까 새로운 군사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당시 정훈의 아빠가 사고를 낸 것은 남파 간첩이 타고 있던 차였다. 생존한 정훈은 얼떨결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지켜봐야 할 경이로운 소년, 애국열사의 아들인 '원더보이'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의 초능력을 알아본 권대령 일당은 원더보이를 재능개발연구소로 데려가고,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고문 취조실에 매일 그를 들인다. 이후 그곳을 탈출한 정훈은 이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에서 화염병을 제일 잘 던지는 선재 형, 첫사랑을 자신이 죽였다고 자책하며 남장 여자로 살아가는 강토 형(희선 씨), 지방에서 농장을 꾸려가며 자족하는 무공 아저씨, 전직 기자 출신으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재진 아저씨...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들을 품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 바다 속에 부질없이 잠겼다. 그건 이유 따위는 없는 슬픔들만 모아놓은 바다였다. 나는 그 바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우울에는 절망과는 다른, 나름의 침몰방식이 있었다. 절망이 강물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라면, 그래서 어느 정도 내려가면 다시 딛고 올라설 바닥에 닿는 식의 침몰이라면, 우울은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심해로 빠져드는 일과 비슷했다. 슬픔+슬픔= 위로? -P156


 


정훈에게는 죽을 줄로만 알았던 엄마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니 느낀다. 아빠의 비망록을 통해 수렵꾼으로만 알고 있던 아빠를 제대로 알게 되고, 어렴풋이 엄마에 대한 단서도 찾게 된다.


 


"정답이야 세상에 널려 있잖아. 네 아빠의 비망록에도 이미 다 나와 있고, 1968년에 네 아빠와 엄마는 처음 만났고, 그래서 네가 태어났어. 그게 정답이지. 우리가 모르는 건 그 정답에 대한 질문이야. 네가 태어난 게 정답이라면 원래 질문은 뭐였을 것 같니? 세상의 모든 비밀들은 그렇게 거꾸로 거슬러올라가야지 밝혀낼 수 있는 거야." -P242


 


이야기는 당시 저마다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 군상과 그들과 공감하며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정훈의 모습을 그린다. 그 중에서도 강토 형(희선 씨)은 정훈과 한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 때문에 죽었던 약혼녀 이수형을 내내 떨치지 못한다. 군부 독재의 암흑기가 펼쳐진다. '모두가 함께 웃던지, 아님 혼자 울던지' 선택해야 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 하지만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던 그 시간. 시간들이었다. 결국 정훈은 슬픔과 슬픔이 만나 위로를 얻었고, 다른 이들과 공감함으로써 서서히 어른이 되어간다.


 


 


나의 15살을 되돌아본다


처음 세상의 불의를 느꼈던 중학교 2학년 교실. 전교조로 낙인찍힌 담임 선생이 채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과학을 담당했던 그 선생님을 두고, 수꼴(국가에 헌신하고, 폭력을 일삼으며, 획일화된 노트 필기를 강요했던 대부분의 선생들) 들은 '참교육 한다며 애들을 죄다 빨갱이 만들라고 지랄을 떤다'라고 했다. 그 후 출판사 영업사원이 되어 학교를 찾은 담임 선생님의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년이 넘게 흘렀다. 생각해보면 내 생은 그때와 비교해보면 경이로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결코 좋은 의미의 경이로움은 아니지만,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사실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 <원더보이>에서도 담고자 했던 바는 바로 '희망'이다. 홀로 외롭게 부유하는 영혼의 몸짓이 아니라, 함께 기적을 이뤄가는 따뜻한 불빛에 가깝다.


 


해가 지는 쪽을 향해 그 너른 강물이 흘러가듯이, 인생 역시 언젠가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로 접어든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에 대해서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눈을 뜨고 꾸는 꿈속의 일. 그러니까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내개 본 그 수많은 눈송이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 본문 중에서


 


정훈은 '이새인'이란 엄마의 존재를 편지로 통해 알았고, 분신할 것 같았던 강토 형(희선 씨)과도 따뜻하게 마음을 나눈다. 결국 이 소설은 나이를 막론하고 인간의 실존적인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스듬히 자리를 내줄 때 그것은 따뜻한 위로,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그건 우리가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어림잡아 3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중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별은 현재로서는 지구뿐입니다. 그래서 지구는 고독합니다. 이 고독은 3천억분의 1의 고독입니다. 그 별들 중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하나라도 더 있다면, 이 고독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때 지구의 밤은 지금보다 두 배는 밝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하나 뿐입니다. 아무리 별이 많다고 해도 지구가 3천억분의 1만큼 고독한 한에는 지구의 밤은 여전히 어두울 것입니다. -P305~306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315


 


우리 은하까지 폭을 넓히지 않고, 지구 상의 인구로만 따지더라도 난 70억분의 1이다. 얼마 전까지 내 고민은 계속됐다. '내 인생은 왜 이리도 불행하고, 깜깜한 터널처럼 어둡기만 한 것인가?' 외로웠던 것이다. 살아간다는 삶의 행위 자체가 무서웠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지... 그것들을 망각하고 지낸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사랑을 쓰는 김연수다


김연수 님의 표현대로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어두운 까닭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아직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정훈이 마지막으로 봤던 아빠의 그 모습이 우리네 삶의 정답은 아닐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우주비행사처럼 밤거리의 (희망의) 불빛들을 향해 나아가던 그 옆모습' 말이다.


 


여러모로 내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 소설이다. 제목부터가 내가 평생 듣던 별명이었으니 말이다.(내 본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마지막으로 김연수 님이 연재를 시작하며 적은 글을 되새겨본다. '나는 글을 쓰게 되어 있다.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김연수 님. 결국 그의 지난한 글쓰기는 사랑을 향해 있다. 독자로 하여금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 옛날, 예전 한 때로 돌아가 추억하고, 절로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멀리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사람도, 너무 힘들어 고개를 숙인 사람도 끝이 없이 텅 빈 우주공간 속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들처럼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건 멋진 여행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한번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테니까, 우리는 다들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한 셈이니까. 이게 고통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입니다.
_‘연재를 시작하며’에서(『풋,』 2008년 봄)


 


* 뱀발


이번 소설의 경우 실험적인(포어보다는 다소간 얌전하지만) 타이포그라피와 레이아웃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물의 독백 부분 처리가 묘미였는데, 그 표현(인쇄 상태)이 무척이나 거칠다. 본문은 블랙으로, 독백은 그레이로 처리했으나 인쇄 퀄리티(먹 1도 단행본의 경우)로 미뤄 봤을 때 상당히 구현해 내기 힘든 조건이다. 읽는 내내 독백과 본문의 구분에 애를 먹었으며, 약간은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국문에 있어 이탤릭체를 선호하진 않지만, 차라리 이탤릭으로 처리하던지 아니라면 그레이를 30% 정도까지 빼던지 했어야 했다.어떤 방식으로든 본문과 독백의 명확한 구분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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