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무료 모바일 메신저 K사에서 스마트폰 유저들에게 재기 넘치는 공지사항을 올렸었다. 이른바 "사기 치는 스마트 호랑이를 조심"하라는 것! 이 공지사항의 요지는 피싱과 개인정보 유출에 주의하라는 것인데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처럼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엄마 손, 목소리를 흉내 내며 접근해 왔을 때 어처구니없이 속아 넘어가지 마라는 당부였다. 설마하니 가족의 목소리도 구분 못할까 싶지만 최근에는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2010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제5회 오에겐자부로상을 수상한 호시노 도모유키의 <오레오레>의 이야기도 처음에는 이렇듯 보이스 피싱 행각에서 시작됐다.
주인공 ‘나(히토시)’는 평소처럼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맥도널드에서 홀로 점심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다이키)가 그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특히 공공장소에서 떠들지 않는 것이 기본예절이다. 그래서 ‘나’는 돌발적으로 그의 휴대폰을 몰래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곧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버리려던 순간 전화 주인의 어머니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으나 다시 걸려온 전화는 작정하고 천연덕스럽게 받아 전화의 주인인 다이키 행세를 하며 돈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설마 속을까 했는데 실제로 히토시의 계좌에는 돈이 입금되었고,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나 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다이키의 어머니가 히토시를 찾아와 그를 그녀의 아들 다이키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일이 당황스러운 히토시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찾지 않았던 본가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나’가 아들로 존재하고 있었고 이후로도 히토시는 각기 다른 ‘나’를 만나며 진짜 ‘나’는 누구인지 혼돈 속에 빠진다.
또 다른 ‘나’의 존재와 자아 정체성의 혼란 등은 인간복제를 그렸던 영화 “아일랜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호시노 도모유키의 <오레오레>는 그보다 훨씬 극단적이고 무서운 상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급기야 ‘나’라는 존재들끼리의 살인이 난무하고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상황에서 ‘나’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후 또 다른 ‘나’의 껍데기를 쓰고 다시 생을 이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누군가에게 먹히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얻는 기쁨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나'를 자각하게 만든다.
주체성을 상실한 ‘나’는 복제 증식된 천편일률적인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스스로를 무의미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로 내팽개쳐 버리는 순간 '나' 역시 삭제되고 만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너지고 개인은 단절된 채 최소한의 믿음마저 사라진 사회. 저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출발해 초현실적인 결말로 독자를 이끌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독창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책의 띠지에서처럼 이 작품은 현재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 중에 있다. 히토시 역의 남자 배우는 무려 1인 25역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결말부에 등장하는 끔찍한 장면들은 알아서 걸러내고 코믹하면서도 나름 의미심장한 영화로 재구성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