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답답했다. 1/3쯤 알고 있던 내용과 나머지 몰랐던 내용들. 뭔지도 모르면서 그동안 고기를 안 먹고 채식 위주로만 살아왔던 나(고기맛을 모르는 탓이 가장 크지만). 그리고는 막연하게 '육식보다는 채식이 낫겠지'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육식이니 채식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까지. 이 책은 프로듀서인 작가가 취재 과정을 책으로 엮어 놓은 책이다. 전 세계의 전문가들을 취재하며서 진실을 밝혀 내고자 한 과정과 결과물이니, 읽고 믿거나 믿지 않거나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나는, 믿는 독자 쪽이고.
소고기는 모르겠고, 적어도 계란의 비밀을 나는 이제 안다. 내가 먹어 봤으니까. 사 먹는 계란과 우리 뒷마당에서 키우는 닭이 나은 계란의 맛 차이, 사료를 먹은 암탉이 낳은 계란과 마당을 헤집고 다니면서 풀과 벌레를 먹은 우리 닭이 낳은 계란의 상태 차이를 아니까. 이제 앞으로도 계란을 못 먹었으면 못 먹었지 슈퍼에서 사 먹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것까지.
결국 인간이 발달시키고 있다는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쉽게 대답하려고 한다면 절반의 재앙과 절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일부러 저지르지 않아도 좋을 잘못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양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과학기술을 그릇되게 이용하는 사람들의 잘못, 이를 어찌한단 말인지.
몽골 유목민들이나 티벳 유목민들이 가축에게서 직접 짜서 먹는다는 우유가 왜 좋은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슈퍼에서 팔고 있는 살균 우유들이 골다공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이유가 무엇인지까지 알게 되었다. 알고 먹고 모르고 먹고, 알면서도 포기하고 몰라서 또 당하고, 당장 오늘 저녁을 먹기 위해 슈퍼에 가서 무엇을 구해야 하나.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건강을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무엇보다 간절한 바람이고, 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물체에게 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싶다. 살만큼 살고, 제대로 살고, 같이 살 수 있는 길. 우리는 자신의 몸에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동물이니 어쨌든 먹어야 살 수 있다.
먹고 살만해지긴 한 모양이다. 이런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었으니.
25 소가 풀을 먹으면 버터는 노란색을 띤다. 풀의 베타카로틴 때문이다. 우리가 버터를 노란색으로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가 옥수수를 먹으면 버터는 흰색이 된다. 다만 시중의 버터가 노란색인 것은 색소를 넣기 때문이다. 풀을 먹은 소의 버터에는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성분들이 많다.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풀을 먹은 소의 버터는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반면에 옥수수를 먹인 소의 버터는 몸에 나쁜 오메가-3 지방산이 많고 비타민을 비롯한 미량 영양소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38-39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금지하는 것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영양 정책이다. 근 10년간 프랑스 의사들은 성인병 환자들에게 버터를 먹지 말라고 했다. 먹는 문제에 관한 한 피에르 베일 박사의 입장은 명쾌했다. ‘영양 섭취에 있어서는 나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다. 모두 균형과 품질의 문제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식습관은 지역 특색과 연관하여 발전해 온 문화이다. 왜 어떤 지역에서는 생선을 많이 먹고, 어떤 지역에서는 육식만 하는지, 왜 어떤 지역에서는 채소를 많이 먹는지, 왜 여기는 쌀이고 저기는 밀인지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먹이사슬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지역 환경에 적응한 것이고 관계를 형성해 온 것이다. 여기에 나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버터를 많이 먹었다. 소가 풀을 많이 먹을 때였다. 이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소가 옥수수를 먹을 때 버터를 많이 먹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63-64 코데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의 유전자는 2백 50만 년 전 구석기인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수렵 채집인들이 먹었던 것과 같은 것을 먹을 때 가장 건강하다.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의 72% 정도가 구석기 시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단백질과 지방을 더 많이 먹었으며 탄수화물은 적게 먹었다. 쌀, 밀, 보리, 옥수수 같은 곡물은 약 1만 년 전에야 겨우 ‘발명’되었으므로 구석기인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다. 구석기인들은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55%를 고기로부터 얻었다. 구석기 시대의 고기는 현재의 것과 전혀 달랐다. 동물들이 풀을 먹고 많이 달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구석기인들이 섭취한 오메가-6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은 1:1이었다. 이런 섭생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99.6%의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106 요즘 우리는 어떻게 했나요? 소에게 옥수수를 줬죠. 돼지에게 콩깻묵을 줬어요. 모두 오메가-6 지방산만 풍부한 것들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매우 불균형한 영양 섭취를 하고 있는 겁니다. 즉 동물성 식품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부적합한 식물성 먹이를 먹은 동물성 제품’을 먹는 게 큰 문제인 겁니다. 동물들에게 올바른 먹이를 먹인다면 동물성 식품을 먹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먹이사슬 안에서 우리에게 좋은 지방을 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 안 좋은 먹이를 주면 당연히 동물들도 안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게 되는 겁니다. 즉, 문제는 동물이냐 식물이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조장하는 먹이사슬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154 약국에서 파는 비타민 알약은 생명체의 일부분이었던 적이 없다. 그냥 옥수수전분으로부터 합성된 인공물질일 뿐이다. 우리의 몸에 그것은 단지 ‘약품’일 뿐이다. 합성 비타민은 과다 복용하면 독성이 있고 때로는 백혈구 수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자연식품의 비타민C는 독성이 없으며 면역반응을 촉발하지도 않는다. 155 비타민C는 아스코르브산과 루틴뿐 아니라 다양한 식물 색소 그리고 여러 종류의 미네랄이 복합되어 기능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비타민C의 활동에는 구리가 필수적이다. 아스코르브산은 과일과 채소에 들어 있는 수많은 파이토케미컬(식물을 활성화하는 물질)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그 효과를 낸다. 이것이 인공식품이 천연식품을 모방하지 못하는 이유이며 NASA가 인공식품을 포기한 배경이다. 164 풀만을 먹여 키운 소의 젖을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고 그냥 병에 받은 우유, 이것이 로밀크다. 슈퍼에서 파는 우유는 가열 살균처리를 하고 균질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일종의 가공식품이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로밀크란 말이 주는 어감 때문에 나 역시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모금 먹어보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맛이 났다. 아니 아무런 맛도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유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고소함도, 단맛도 없었다. 그냥 신선한 그 무엇이었다. 약간 점성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내가 알고 있는 우유의 그 어떤 맛도 나지 않았다. 165 “슈퍼에서 파는 우유는 독이죠. 로밀크는 음식이고요. 슈퍼마켓의 우유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야 합니다. 원래 소들의 먹이가 아닌 옥수수를 억지로 먹은 탓에 병이 난 소들의 젖!” 167 유제품의 경우, 소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내용물은 확연히 달라진다. 유기농 풀을 먹고 자란 건강한 소는 건강한 젖을 만든다. 옥수수를 먹는 소는 위장에 대장균이 생기게 된다. 대장균이 우유와 고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가열 살균하고 균질화 공정을 거치게 된다. 살균과 균질화 과정을 거치면 우유에 들어 있는 좋은 박테리아와 효소도 함께 파괴한다. 결과적으로 우유는 필수성분이 결핍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젖소가 의도한 내용물이 아니다. 로밀크는 이런 공정을 거치지 않아서 몸에 이로운 효소와 박테리아가 그대로 살아 있는 우유이다. 살아 있는 효소는 우유를 쉽게 소화하도록 돕고 좋은 박테리아는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 190 로밀크가 갖는 영양학적 장점, 우유가 갖는 경제성과 생산성, 풀을 기반으로 한 로밀크의 생태적 건강성 등 우유의 장점은 많다. 그리고 현재의 기술력과 행정력은 안전한 로밀크를 생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IT 기술을 활용하면 우유를 마시면서 그 우유를 짠 소의 현재 모습까지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산림이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한국의 지리적 여건에서, ‘풀을 기반으로 한 축산업은 정말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희망은 있다. 잘만 사용한다면 풀은 부족하지 않다. 케지아레인 농장의 밀튼 아서는 이렇게 말했다. “소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풀을 뜯게 해 주면 됩니다. 저는 소를 기르는 게 아니라 풀을 기르죠.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합니다.” 215-216 <먹어도 되는 기름> 버터 코코넛오일 들기름 참기름 아마씨유 올리브유 생선기름 <절대로 피해야 할 기름> 옥수수기름 면실유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콩기름 정제유 수소첨가 경화유 트렌스 지방 쇼트닝 232 고기도 충분히 건강한 음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가축에게 무엇을 먹이는가에 따라 다를 뿐이다. 건강한 고기를 위한 필수조건이 무엇인지도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고기와 과거의 고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먹었던 들소 고기와 현재의 미국산 소고기 역시 완전히 다른 고기이다. 마찬가지로 우유와 버터, 그리고 달걀까지 가축이 먹는 사료에 따라 질적으로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243 과도한 방목은 풀을 너무 짧게 잘라 먹게 해서가 아니고, 너무 오래 같은 곳에서 먹게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풀을 잘라내 건초를 만들었다면, 다시 그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죠. 마찬가지로 소들은 매일 새 초지로 이동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풀들이 쉴 시간이 생기죠. 굉장히 단순한 건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어요. 253-254 소 역시 풀과 공생관계에 있다. 소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시킨다는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소가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모든 게 그렇듯이 소 역시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소들이 푸른 잎을 먹는 경우 소는 추가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는다. 소가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는 풀에 있던 것이고 이미 대기 중에 존재하던 것이다. 소가 옥수수를 먹는다면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에는 화학비료 등에서 온 것이 새롭게 포함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석유에서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보낸다. 옥수수 축산의 높은 생산성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힘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석유 에너지로 만든다. 현재의 피드롯 시스템에서는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1배럴의 석유가 소비된다. 풀은 옥수수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이것은 뒤집어 말해 풀 축산이 옥수수보다 화석 에너지를 적게 소비한다는 뜻이다. 풀 축산에서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대신 토양 속으로 스며들게 되고 토양은 탄소 저장고의 역할을 하게 된다. 토양은 원래부터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을 해왔다. 우리가 이산화탄소를 토양에서 공기 중으로 다시 방출시키기 전까지 이산화탄소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소는 우리에게 고기, 우유 등 먹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농사와 운송 등 동력원을 제공해 왔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적인 상태라고 인식되어 온 것들은 모두 지구에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 유익한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259 아직까지 채식이 건강에 더 좋다는 통계적 증거는 없다. 평생을 채식을 유지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육식을 한 사람들과 거의 같았다. 현 시점에서 인류가 본래 채식에 더 적합한지, 육식에 더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진화의 맥락에서 인류는 육식과 채식의 증거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송곳니가 있는 것은 육식의 증거이고, 긴 창자와 맹장은 채식의 증거이다. 구석기 유전자는 육식에, 신석기 이후 유전적 대응은 채식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우리 몸은 어느 쪽이든 적응할 수 있다.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풀을 먹인 건강한 고기와 우유를 구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 우유를 주고 이따금 고기를 배불리 먹는 일이 몸에나 환경에 나쁠 리 없다. |
옥수수의 습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