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는 미국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해방 후, 점령군으로써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주둔해 있고, 우리의 정치지형을 오늘날의 형태로 고착시키는데 자의든, 타의든 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기에 한국 현대사는 한미관계를 빼놓고서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한국 내에서 한미관계에 대한 논란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한미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보수는 한국전쟁 당시의 혈맹을 강조하며 수혜적 관점에서 미국을 바라본다. 반면에 진보는 한국사회의 모든 모순의 근원이 미국이라는 피해자적 관점에서 한미관계를 규정한다. 그런가 하면 검은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극좌 종북주의자들은 미국을 사상의 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들 모두, 아니 우리들 모두는 미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나름대로 일관된 정책을 가지고서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순간, 미국은 우리의 역사 진행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 현대사의 굴곡들을 보면서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또 어떻게 관여 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학자와 정치가들을 인터뷰하고, 이제는 비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통해 추적했다고 한다. 문화일보 기자출신이면서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한 저자가 그렇게 해서 밝혀낸 결론은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은 놀랄 정도로 우연적이고 임기웅변적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은 항상 독립변수가 되지 못했고, 일본과 중국의 종속변수로 일관 했다고 한다. 이것은 역사학자인 김기협교수가 쓴 [해방일기]에서도 드러난다. 김기협 교수는 당시의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2차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게 되자, 미국은 전후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연구하고 준비를 하였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소련의 팽창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이남에 미군을 주둔 시켰고, 그래서 군정당국은 일관된 정책없이 그때그때 임기웅변 식으로 점령지인 이남을 지배했다고 한다. 물론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순들을 잉태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고, 중국은 미군이 중국의 국경지대를 위협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기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맥아더와 트르먼의 갈등은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미군 사상자들을 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으로 휴전협정이 지지부진해지자, 미국은 한국전의 종전을 위해 한국이 요구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미끼로 내걸었지만, 그것은 마지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한국은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기에 상호동맹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잘못 엮일 것을 염려해서 소극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2차대전 이후 군비를 감축해오던 미국의 국방예산을 대폭 확장시키고, 동서냉전을 확고하게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현대사의 굴곡이 있었을 때마다 미국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미국은 쿠바사태에 휘말려 있었고, 북한의 침입이 없다면 군사쿠데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고 한다. 또한 1972년 10월 유신은 박정희가 미국의 대통령선거 기간을 노렸고, 이미 베트남 수렁에 빠져있던 미국은 역시 한국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저자는 미국측 비밀문서를 토대로 말하고 있다. 1979년 전두환의 12.12쿠데타와 이듬해 5.18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도, 미행정부의 관심은 이란의 인질사태에 쏠려있었고, 미국이 전두환 군부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동서냉전기였던 이 시기에, 미국의 정책은 오로지 북한의 침입여부가 최우선시 되었고, 그것은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주한미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기대한 것과, 그들이 실제로 할 수 있었던 것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했었다고 말한다. 결국 미국을 통한 해결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미국은 항상 그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글이 그러한 미국의 입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역사의 기록들은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아메리카 트라우마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또 북핵 및 북미관계, 그리고 미래의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미국내 정치학자나 외교관들의 인터뷰, 혹은 비밀 해제된 안보문서를 통하여 이야기 한다. 북한문제는 한반도에서 미국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가 가장 심각하게 지배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자신들의 국내사정이나 중동 또는 유럽의 정세 등에 좌우되고 있으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그네처럼 오락가락 했다고 한다. 그들의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또한 북한은 잘못된 생존전략을 고집하고 있고, 미국은 이러한 북한을 동북아 지배전략의 빌미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스스로의 트라우마 때문에 오히려 미국의 덫에 걸려있는 셈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문제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다. 동북아에서 한국의 미래는 북한과 함께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향후 한미관계의 성격을 규정하는 원인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53년 한미군사동맹이 체결되고 60년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과 미국은 군사동맹의 기초 위에서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해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미국은 우리 현대사의 격변기마다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았다 해도, 미군이 주둔하고, 패권국가라는 것 만으로도 이 땅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콤플렉스를 가지게 만들었다. 언젠가 미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저자, 그때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은 주변의 나라들과 어떤 식으로든 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관계는 미래의 한반도와 관련하여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러한 새로운 한미관계를 위해서, 우선 미국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한미관계의 실상을 정확히 안다는 것, 그들이 60년 동안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을 하였는지 진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 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대로 과연 미국의 모든 대한정책이 임기웅변 식이었을까? 미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이 과연 저자의 말처럼 그러했는지는 조금은 회의가 든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은 그러하겠지만, 역사적 사건에서 사실이 반드시 진실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한미관계를 제대로, 그리고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 준다.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임에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