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쇼지, 김선영 역,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검은숲, 2012.
Yuuki Shoji, [GOMESU NO NA WA GOMESU], 2008.
지금이야 일본 미스터리의 다양한 장르를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처음부터 정통이니, 사회파니, 본격이니, 하드보일드니... 라는 구분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실험적인 시도와 개척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토대가 마련되고, 독자의 호응에 따라서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유키 쇼지의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는 요즘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의 획기적인 작품과 비교한다면,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들며, 판타지나 SF적인 요소가 첨가되고, 영화적인 묘사와 스피드한 전개, 반전의 반전을 이루는 복합적인 구조... 더구나 스파이 물이라고 한다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주인공,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위기의 순간에 발휘되는 비밀무기, 금발의 미녀와 세계를 누비며 특급호텔 스위트룸의 화려함이 있는.., 아쉽게도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에서는 이러한 공식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단조로운 구조, 평범한 캐릭터, 반전이나 자극도 약하고, 특별함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출판사는 왜 이러한 소설을 번역 출간한 것일까?
하지만 이 작품이 1962년에 쓰였다는 점, 유키 쇼지가 일본 하드보일드 작풍을 도입한 선구자라는 점, 획일적인 추리 일변도에서 스파이 물을 다루었다는 점, 배경이 국내가 아니라 전운이 감도는 베트남 사이공이라는 점, 그리고 또... 이러한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작품의 의미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살해당한 게 아닐까?
그때, 내가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러길 바랐기 때문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죽음을 바라는 내 마음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뒤틀린 마음은 또한 그 바람과 똑같은 비중으로 가토리의 생환을 바라고 있었고, 그것은 어두운 그림자 반대편에 자리한 진실이기도 했다.(p.24)
나치난 무역회사 사이공 출장소, 가토리는 파견 3개월 만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복귀를 신청한다. 그리고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3년 전 파견의 경험이 있고, 후임 예정자인 사카모토는 현지 사무소를 중심으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와 내전의 기운으로 끓어 오르는 현지의 분위기는 모든 것이 녹녹치 않다.
만나는 이들은 가토리의 실종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강도상해로, 마약중독으로... 그의 죽음만을 추측할 뿐,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살인이 일어나는데... 죽기 직전 한 남자는 "고메스의 이름은?"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랬지.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부러워. 나는 너무 많은 시체를 보고 말았어. 다들 통나무처럼 죽어나가는 거야. 그걸 보고도 구역질을 참고 침을 삼켜가며 그저 지나가기만 했지. 나중에야 사람이라는 게 저렇게도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면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더군. 태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후였어. 포로로 잡은 병사들이긴 했지만 그놈들을 죽일 때마다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쾌감을 맛보았지. 그 쾌감은 지금도 남아 있어. 씁쓸하고 껄끄러운, 녹 가루처럼."(p.193)
종전 후 패전한 조국으로 송환되기보다 베트남에 남는 길을 택한 일본인들이 수백, 많게는 천에 이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인도차이나전쟁을 치르는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 군에 들어갔고, 어떤 이는 프랑스 군 외인부대에 들어가 베트민과 싸웠으며, 또 어떤 이는 현지인과 결혼해 베트남 사회로 달아났다.(p.207)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일본군의 퇴각으로 베트남의 정치적 공백, 과거 식민지를 되찾기 위한 프랑스의 진출, 호찌민이 이끄는 민족 독립운동, 인도차이나전쟁,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 미국의 지원과 남베트남 독자 정권 수립, 베트콩의 게릴라 활동, 내전의 긴장 고조... 현재 우리는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소설의 시각은 1962년에 멈추어 있다. 그리고 전쟁의 기우를 예상한 것일까? 전쟁의 치열함과 폐해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과거에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가 민주화되지 못하고 이번에는 자국 독재자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았어요. 독립 해방된 것은 일부 권력자뿐, 국민의 빈곤한 생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죠. 지금이 나라 내부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 학대받은 민족의 의식이 하나로 뭉쳐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언론 통제나 그 밖의 공포 정치가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다는 게 그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죠. 미국이 아무리 밀어줘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p.219)
과거 냉전 시대의 어두운 역사,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정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독재권력을 지원한 미국의 정책... 혁명적 대의를 위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돈을 위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하는 가운데 스파이가 된 사람들... 소설은 강대국의 정치놀음 속에서 희생당하는, 각자의 처지에서 어느 한 쪽 편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본 추리소설은 마쓰모토 세이초 씨의 [점과 선](1958)으로 현실에서 동떨어진 트릭 게임에서 벗어났고, 범죄의 동기를 깊이 고민해 현실주의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범죄의 동기를 사회기구 내부에서 찾았고, 사건의 발단에서 종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고발함과 동시에 풍속소설이나 여행기가 갖는 흥취를 곁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다시 말해 마쓰모토 세이초 씨 덕분에 추리소설은 오락성, 문학성, 사회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다소 사치스런, 혹은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소설로 성장했다.(p.306-307)
작품을 읽으며, 1960년대는 일본 미스터리의 르네상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새로운 시도로 사회문제를 다루게 되었고, 유키 쇼지를 통해서 하드보일드한 스파이 물이 소개되기도 하는...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가를 통해서 오늘의 다채로운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흥행성과는 별개로 이러한 고전의 반열에 있는 작품을 번역하여,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검은숲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