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보이는 단어는 바로 '사형'이었다. 약간 읽기가 머뭇거려졌다.
이런 어두운 내용을 읽으면 나 또한 그 어두움 속에 같이 침잠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이왕 읽으려고 펼쳤으니 평소처럼 끝까지 한번 읽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난 바로 이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녀 세령을 죽여버린 남자, 최현수.
세령의 아버지, 오영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자신의 딸을 죽인 최현수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도 함께 처리해버리기로.
그 복수에서 자신의 아들, 서원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
이 부자를 도와주고자 노력하는 구원자이며 딸의 복수에 방해가 되는 훼방꾼이기도 한 안승환.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줄여보자면 아마 이정도가 될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강력한 스토리의 힘.
지난번 읽었던 번역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우리나라 장편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음에도 나는 빨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책의 두께가 500쪽이 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만에도 다 읽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가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서원에게 닥칠 무시무시한 재앙이 나도 두려워서 말이다.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기 위한 절대 명제이다.
그러나 이 문장에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모두 다 동의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저울에 올려두었을 때 어느 한 쪽이 분명히 내려간다는 것. 둘 다 무게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완벽한 수평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자식은 소중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집착이든, 교정의 대상이든.
최현수에게 최서원은 자신의 삶에 찾아든 환희였다.
오영제에게 오세령은 자신의 딸로서 자신의 사랑을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야하는 존재였다.
그 방식이 잘못되었을지언정 두 사람 둘 다 자식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두 아버지의 사투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방식에서는 절대 찬성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