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성공은 나의 성공?
대기업 등 외지에서 진출한 기업이 그 지역에 기여하는 방법은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과 지역 제품 구매다. 그런데 사실 순창이라는 고추장 제조회사의 예를 들면, 전체 매출액에서 지역 농산물 구매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0.5%에 불과하다. 3천억 원어치 고추장을 만드는데 15억 원어치의 지역 농산물을 구매한 셈이다. 오히려 전통업체 등 그 지역에 뿌리를 둔 로컬기업은 20%의 원재료를 지역에서 구매하는 것과 비교된다.
대기업의 진출이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까? 순창지역의 공장화된 고추장 제조사의 매출은 3천억이고 고용인원은 375명이다. 1인당 매출액은 8억 원에 이를 정도로 생산성이 좋다. 그러나, 매출이 두세 배 오르는 동안 일자리는 얼마 늘어나지 않는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해서 생산성의 증가만큼 고용증대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순창의 문제는 순창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기업이 지역에 유치되면 모든 경제가 되살아 날 것 같이 호들갑을 떨고, 자신의 공인 양 떠벌리는 정치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대기업이 지역발전에 공헌한다는 두 가지 측면, 즉 고용창출과 지역생산물 구매확대는 미미하다는 것이 실례로 나타난다. 게다가, 자본주의 특성상 모든 기업은 사회적 이슈와 회사의 이익이 충돌하거나 상충할 때에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쫓는다. 기업의 이기심이 최적의 자원배분과 시장경제 운영의 정답이라고 2백 년 더 된 경제논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민다.
대기업이 잘되면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이익이 커질수록 낙수효과에 의해 산업전반에 경제 활성화 효과를 가져오며, 국민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 것처럼 일부 경제학자들과 대기업 부설 연구소는 발표한다. 그런데, 최근 기업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나타나 재벌로 대표되는 대기업은 사상최대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일반 중산층 및 서민들은 그 온풍을 체감할 수 없다. 어찌된 영문일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 종사자는 상장회사를 다 포함해도 5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밖에 안 된다. 대기업이 잘 돼서 수출이 늘어나고 이익이 늘어나면 이 1%안에 있는 직원들은 상여나 연말의 실적 성과금으로 호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주주 및 오너, 경영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집중된다. 그러나, 그 실적을 함께 만들어낸 협력업체는 가격인하 압력과 거래중단 위협으로 적자와 인력감축의 위험에 상시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호황으로 넘치는 잉여금은 핵심분야의 재투자로 고용을 늘려 혜택이 경제 전분야에 골고루 퍼져나가기는커녕 거대자본을 등에 업고 골목상권의 빵집, 슈퍼에 진출하여 서민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토록 신문과 방송에서 주장하는 트리클다운(낙수효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영혼이 없는 기업에서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과 상호호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조정자의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이 구조를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시장 만능주의 과연 최적의 시스템인가?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각각의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이기적인 동기가 경제전체를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이 논리는 2백 년 넘게 시장을 지배해 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 때로는 경제호황도 있었고, 대공황도 거쳤으며, 금융위기와 같은 불황의 늪에도 빠졌다. 과연 시장주의자들의 말처럼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 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각자의 이기심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체제에서 번영을 가져왔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에서 보여준다.
대공황이나 2008년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시기는 그야말로 시장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 경제였으며, 정부의 간섭도 최소화된 시기였다. 기업의 법인세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도 역사상 가장 낮은 시기였다.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덜 걷어 소비를 진작시켜 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시장이 가장 자유로울 때 대공황이 발생했으며,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지배할 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장은 완전경쟁이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독점과 과점이 발생한다. 기업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기 때문에 법과 제도의 틈을 이용해서 교묘히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시장을 교묘히 조작하고, 이제는 힘이 더욱 거대해져서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이로운 법과 제도를 시스템화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무한경쟁을 최고의 시스템으로 여겼던 이러한 경제체제에서 기업은 약육강식으로 배를 불렸으며, 소득격차 또한 사상 최고에 달했다. 대공황 직전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상위 1% 소득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3%에 달했으며, 최저계층은 생계의 보장 및 정부의 복지혜택에도 보호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대공황을 종식시키고 이후 30년 이상의 대번영기를 가져온 핵심동력은 바로 ‘인위적인 것’이었다. 시장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세금은 최대 90%까지 올렸으며, 상위 1%의 소득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로 미국의 전체국민이 고루 살기 좋다고 느꼈으며, 경제가 호황이라고 생각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는 청사진을 그렸으며, 보이는 손의 실패를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여 경제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이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입을 수 있도록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 외의 논의점들
위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는 내가 늘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들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어 내용에 내 생각을 덧붙여 정리하여 보았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훨씬 더 다양한데, 이렇게 영혼이 없는 기업, 시장만능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기적인 선택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선택, 협력적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선택이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저자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진행되고 있는 사례들은 앞으로 좀더 공부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들이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라이시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는 경제의 회복과 번영을 위해서 소득격차를 줄이고, 정부의 역할 증대한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면, 이원재 소장은 이에 더하여 경제성장이 없는 가운데서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대안, 저성장사회에서 탈성장으로의 대안 모색까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환경, 자원, 인권, 노동 등 다른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