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밀려온 바다를 가리켜 칠흑같은 어둠이라고 했던가 싶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칠흑같은 어둠은 먼 바다에 더욱 온전히 머무르는 듯합니다. 밤이 내린 먼 바다는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입니다. 한밤중에 떠오른 달빛 마져 빨아들이는 듯한 넓고 깊은 바다는 원초적이고 미지의 자연 그 자체로 인간에게는 두려움이란 본능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바다는 수세기 동안 과학이 이룩한 발전의 금자탑의 미명하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같았습니다. 아직도 먼 바다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채로, 때묻지 않은 채로 그렇게 남겨져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혹자는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미지의 대상'을 만나면 굴종하거나, 정복하는 관계로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바다에 굴종할 것인가? 아니면 바다를 정복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위안삼아 '제 3의 대안'을 찾았다고 여길 것인가?
이런 바다는 '밀당'의 고수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수세기에 걸쳐 그런 바다에 매혹되었고,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때론 무서운 신으로 군림하기도 하였고, 신앙이 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천의 얼굴'이란 누군가가 던진 바다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모한 도전'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대상이 바다입니다. 어느 서퍼가 사나운 파도를 향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무모하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 홀로 태평양을 건너겠다고 한다면 그 역시 무모하다고 할 겁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도전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대상을 상대로 둔 줄다리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 P9 - |
사십일이 넘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은 여전히 같은 발걸음으로 바다로 향했습니다. 젊은 시절 팔씨름의 달인이었던 그였지만, 지나는 세월의 짐을 가득 짊어진 그는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게 작아졌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랜 세월을 통해 지니게 된 습관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벗어던진 인간은 과연 하찮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들었습니다. 강한 발톱도 없고, 추위로 부터 지켜줄 털도 없는 인간은 자연의 풍광 아래에서는 먼지와 같다고... 하지만, 유아기적 상태를 지나 강해지는 인간이 다시 한번 유아기적 무방비 상태로 돌아가는 노인이, 일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은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어부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무기는 결코 문명의 이기로 이루어진 '부러진 칼' 이나 '노' 가 아닌, 인간이 지닌 '지혜'와 '인내' 혹은 '끈기' 였습니다.
물고기야 난 널 사랑하고 무척 존경한단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널 죽이고 말겠다. - p56 - |
빌빌한 놈치곤 너도 구실을 영 못하진 않았어. 노인은 왼손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필요할 때 네놈을 찾을 수 없는 순간도 있었어. - p88 - |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그의 친구가 되라고, 물론 이것과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노인은 바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습니다. 싸워야 할 대상이면서도, 바다는 노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삶의 터전을 제공하였습니다. 이쯤되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저질러온 수많은 잘못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하염없는 하소연과 같이 들릴 법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들은 '소용에 닿지 않는 것'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고 외면하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트랜드'라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낡은 것'조차 트랜드에 맞추어 갑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른 손잡이'라도 '왼 손'이 없으면 그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오래된 인간'으로서의 어부가 '광활한 바다'를 대상으로 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인'에게 끝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최고의 찬사는 최고의 눈물이라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소년의 모습에 슬며시 제 모습을 투영시켜 보기도 했습니다. 노인은 쓰나미를 향해 가는 서퍼이기도 하고, 심해의 끝이 어딘지 찾기 위해 끊임 없이 자신을 시험하는 잠수부와도 같으며, 바다의 끝도 모자라 바다의 지각마져도 연구대상으로 하는 위대한 과학자와도 같습니다. 바다 앞에 서 있을 때, 노인은 카를로스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