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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Review

글쓴이: kyu1019님의 블로그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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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마놀린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18피트짜리 청새치의 하얀 뼈를 끌고서 고향 항구로 돌아온 지도 이제 어언 30년이 흘렀다. 그 일은 인근 어부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로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그렇게 커다란 고기를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잡은 적은 다시없었다. 거기다 이제 혼자서 낡아빠진 돛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근래에 우리는 출력 좋은 모터와 제법 첨단의 어구를 갖춘 연안 어선을 타고서 한 번에 과거의 수백 배를 어획해 돌아오곤 한다. 시절은 그렇게 변했다.
 할아버지는 그 생의 마지막 싸움 이후로 시름시름 앓으셨다. 폐렴이 원인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음의 순간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셨다. 내 앞에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참으셨다. 마지막 날에는 내가 가져다준 깨끗한 셔츠를 입으셨고, 그 날 셔츠는 땀에 젖지 않은 채로 부드러웠다. 그것은 참 다행이었다.
 
 혼잣말로 끝나지 않는 혼잣말


 


 할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날 마지막 채비를 하던 시간에, 나는 그 처절한 승리와 패배의 이야기를 병상 곁에 앉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아직 가벼운 짐만을 챙겨놓기만 했던 상태, 할아버지는 서두름 없이 그 시간 자신이 마주했던 모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도 나의 가슴을 아릿하게 했던 건 할아버지가 그 가없는 고독 속에서 자신에게 들려줬던 말들이었다.
 “마놀린, 나는 그때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말했단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나를 붙잡기 위해서였지. 사람이 힘든 상황에 그렇게 혼자 처하고 나면 혼잣말을 지껄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힘을 북돋기 마련이지.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너도 알거야. 그건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등대이고, 밧줄이야.
 그런데 말이다, 마놀린. 바다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 그러니까 내가 그 망망대해에서 지껄였던 말들은 혼잣말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했던 그런 말들이 아니었어. 미쳤는지도 모르지만 실은 나는 너무나도 바라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그 순간 내 곁에서 함께 싸워주기를 말이야.
 나는 생각했다, 마놀린. 혼잣말은 혼잣말로 끝나서는 안 되는 거야. 혼잣말은 반드시 누군가와의 대화로 이어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죽고 말 거야. 희망이 사라지지. 고독한 싸움이란 환상이란다. 실은 나는 그 무엇과도 혼자 대적한 적이 없어. 마놀린. 나는 언제나 함께 싸웠단다.
 먼 바다에서 할아버지의 소식이 들리지 않던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두운 바다에서 나 역시 저 멀리 불어가는 바닷바람에 혼잣말을 속삭이곤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혼잣말이란 조금 오랜 시간의 침묵을 요하는 첫 인사 같은 거라고.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 순간 우리는 서로의 대답을 듣게 된 것이었다.


 


 청새치와 상어


 


 나는 딱 한 번 할아버지의 청새치에 버금가는 녀석을 잡은 적이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쾌거는 아니었다. 배의 모든 선원들이 달려들었다. 힘겹게 그물을 끌어올려 갑판 위에 놓인 청새치를 보면서 나는 그리 가슴 떨리는 흥분을 맛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내가 그것과 홀로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내게는 부재했다.
 나는 그립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맞서야 했던 청새치와 같은 존재가, 또 그와 같은 존재를 대면하고자 하는 삶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명의 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처럼 작은 조각배에 노와 낚시도구와 작살만을 가지고 바다로 나간다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불러오고 만들어진 과거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회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에서 스스로 찾아내고 맞서야만 하는 것. 하지만 근래에 과연 누가 그것을 찾아 헤맸고, 그 의미를 물었던가. 이제 그러한 삶은 구박받을 뿐이다. 보다 편리하고 화려하며, 너무나 쉽게 꿈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과거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삶을 대체했다. 이제 그처럼 겸허하고 남루한 생의 투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그립기만 한데 그것은 바로 청새치를 덮쳤던 상어들이다. 아니, 하필 왜 상어냐고? 할아버지의 승리를 좌절시킨 장본인을? 왜냐하면 우리의 승리에는 필연적으로 패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에 가서 패배가 닥치지 않는 온전한 승리란 없다. 할아버지는 바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얀 뼈만 남긴 청새치를 끌고 돌아왔어도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거기에 우리는 그 패배에 이르기까지의 싸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모든 희망을 주저 없이 밑바닥까지 내바쳤던 싸움 말이다. 그러했기에 할아버지는 자신을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되지 않고, 산티아고 할아버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맑고, 깊은 눈매를 지킨 채로 말이다.


 


 나와 바다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바다를 마주한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바다를 찾은 것도 같은데, 아직 그 적막한 수면 위에서 제대로 된 싸움을 벌여본 적은 없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지금 그 바다 위에 있는 게 아닐까. 한 손에 밧줄을 잡고서 청새치와 씨름하고, 별을 보고 혼잣말을 하며. 다만 아직 돌아갈 날이, 온전히 패배한 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오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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