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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글쓴이: 오로지 블로그 |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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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미국판 막장드라마라고 단정적으로 평했다. 표면에 드러난 사실로만 따진다면 막장드라마라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막장드라마라는데는 동의 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막장드라마는, 말도 안되는 사건-살다보면 막장 같은 일이 어디 한두가지인가, 그런 일이 없었다면 당신은 행운아-의 연속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도 모르고 화내는 사람과 주장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 상대의 말을 듣고 온전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나타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사건에서 자신의 이득 만을 위해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들만 존재할 뿐이고, 상대에게 상처줄 생각 없다는 맑은 얼굴로 상대방에 뒷통수를 치는 일이 반복된다. 막장드라마는 상대방과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볼 생각이 없이 자신의 목적대로만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싸안을 생각이 없으니 막장으로 갈 수 밖에.  그리하여, 막장이 일상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저 단순하게 막장드라마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영화는 각자 나름의 시각으로 보고 나름의 느낌을 갖으며 그 느낌을 간직하는 것이기에 본 것에 대해서는 각자의 품 만큼만 느끼고 갖는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생각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가족이라고 묶어 놓아도 어짜피 각각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묶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봤다.


 


이 영화에서는 상처의 맨살을 드러내고, 힘들어죽겠다고 외치며, 책임의 문제를 저울질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항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누구도 얼굴에 점 하나를 찍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지도 않고, 그저그런 사람이었다가 복수의 칼을 갈며 만능이 되어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엄청난 기업을 한순간에 망하게 하는 기교 또한 없다.  이 영화에는 그 막장이라고 말하는 모든 상황을 바닥으로 내려놓는 처절함이 있다.


 




 


나에게도 지랄 맞은 친인척들이 있다. 함께 모이는 즐거운 명절놀이는 TV에만 있는 것이고 만나면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도 이미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닳고 닳은 서로 과거를 들춰내며 헐뜯기 바쁘다. 좋은 일에 축하나 함께 나누는 기쁨은 찾아 볼 수 없고, 그 좋은 일의 끝에 나쁘게 된 사람들의 예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늘 부담스러웠다. 그런 불편함 속에 전 붙이기와 설거지의 중노동이 함께했으니 명절이 좋을리가. 물론, 나이들어 생각하기에 그들도 한국전쟁이라는 큰 회오리 속에서 처절한 상황에 떨어져 삶을 살아내는 것도 바빴으니, 서로 사랑을 나누고 돌보는 일이 낯설어서 그 상황이 되었으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워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친인척 이외에도 수두룩 빽빽하게 많다. 피로 묶인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가 아니니 관계의 밀도가 다를 뿐이다.


 


영화의 이 지랄맞은 가족은 상황이 다를 뿐, 각자의 느낌이 고스란히 내 몸을 통과해나가는것 처럼 고통스러웠다. 함께한 시간으로 인해 생긴 오해와 삶의 변형들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보인다. 사건의 시작이 훨씬 오래된 과거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서로 마음의 짐이 있다면, 관계는 좋아질 수 없다. 그 좋지 않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부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감내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세월을 끌어 안고 살아 나중에 남은 빈껍데기 같은 공허한 마음은 어찌 감당할 것인가?  컴컴한 동굴같은 집 안에 들어앉아 약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못버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악담 속에 상처를 드러내는 엄마, 삶의 부담과 무게가 느껴지는 첫째, 삽으로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찍어도 시원치 않을 놈과 알면서도 떠나는 둘째, 자신의 사랑에 대한 진실에 휘청거리는 막내의 울먹거림, 자신의 엄마에게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있는 사촌, 젊은 여자와의 문제로 나갔다지만 첫째와 아직 완전하게 헤어진 것은 아닌 첫째의 남편,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되새김질 하며 삶으로 갚아나가는 이모. 그리고 과감하게 벗어나버린 아버지. 이 가족의 모두가 입체적이고 생생해서 징글맞았다.  이 복잡한 집안에 들어와 삽을 들고 악당을 무찌르며 균형감이 있는 조나를 끊임없이 부정하던 바이올렛(엄마)은 조나의 품에 안기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로는 무척 훌륭했고 몇장면에서는 여러가지 의미의 눈물이 나기도 했다. 모두 행복하기는 그른일 같지만, 모두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낯선 존 웰스 감독과 제작자 조지 클루니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뭔 말을 더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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