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학창시절에는 "어, A라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B라는 방법도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건 B에 가까워요. 그 두 가지 방법은 ㅇㅇㅇ 씨와 XXX씨 등등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고, 그 사람들이 활동하던 시대상황... 어쩌구 저쩌구"와 같이 작업을 하게되는 동기, 방법을 장황하게 살을 붙여가며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회에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만 있는게 아니라 제 전공과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의견을 관철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가능성을 이야기 해주기 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만족할만한 단 한가지 방법만 이야기합니다.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듯 이야기하면 망설이는 것 같아보이는데다 일을 진행하기가 더딥니다. 이른바 '요점만 간단히 쓸모있는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시오'가 제가 일을 할 때의 의사소통 철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웨스 앤더슨은 일을 아주 잘하는 감독같아요. 관객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는데, 아마추어처럼 장황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관객들이 그의 세계를 알고 싶게 합니다.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확립시키는 무대 미술도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완벽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동유럽풍의 세계, 실제하지 않지만 '이것은 세계대전 이전의 동유럽국가를 모티브로 했습니다.'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 수 있고 그런 장면들이 어설프지 않습니다.
더불어 액자 형식으로 이야기를 포장한 것이 더욱 더 동화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라는 책(현재) -> 무스타파라는 이민자 부자의 인생을 듣는 작가(과거) -> 부자 무스타파가 겪은 일(과거, 이 영화의 알맹이가 되는 부분)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합니다. 구구절절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한 생략에서 감독의 노련함을 느꼈습니다. 캐릭터를 성급하게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났던 것도 그 무렵이었어, 하지만 생각만해도 슬프니 그 사람 이야기는 넘어가지"라는 식으로 최소 한 번 언질을 해준 뒤, 이야기에 등장시킵니다. 그 말의 뉘앙스와 나레이션과 교차되어 나오는 영상으로 관계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그런 완벽한 세계관이 구축된 영상과 이야기를 이해시키는 노련미, 더불어 감독이 전작에서 더 나아가 역사 안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정의와 희망이 정확하고 다면적으로 캐릭터에 녹았기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에도 여운이 짙게 남으면서 계속 감독의 정보를 찾게 합니다. 믿고 보는 감독으로, 작품을 만들면 만들 수록 더 대중적이고 전염성이 짙으며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듭니다.
감독의 전작에 비해 끝부분을 우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웨스 앤더슨은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와 문라이즈 킹덤으로 빈틈없이 완벽한 세계관과 어른을 위한 동화를 보여줬기에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관철시키고 싶은 주제를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싶은 정의와 희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현실을 보여줬고, 그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영상미, 캐릭터, 이야기, 배경음악 모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