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1905-1980)는 과학교육을 받았으나 작가를 직업으로 삼았다. 특히 케임브리지에서 과학이 매우 활발하고 물리학이 놀랄만큼 창조적이었던 시기를 보내며 낮에는 과학자들과 밤에는 문학하는 동료들과 어울렸다. 1932년 <네이처>에 발표된 그의 논문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공개적으로 취소되는 상처를 입으면서 과학적 연구와 결별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를 계기로 저명한 소설가이자 평론가이며, 고위행정가로서 성공적인 길을 가게 된다. 그 자신이 <두 문화>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 부재와 상호 몰이해가 안타까와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강연을 하게 되었다. <두 문화>라는 개념은 전세계적으로 열띤 흥분을 일으키며 환호와 비난의 대논쟁을 격발시켰다. 이 책의 제1부는 바로 195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리드 강연 내용, 제2부는 강연후 4년 동안 있었던 논쟁에 대한 그의 후기, 제3부는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 논문을 첨가한 것이다.
20세기까지 엘리트 교육과정은 고전교육이었으며 과학교육은 직업적이고 저급한 활동, 신사에게는 부적합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과학혁명이 도래했음에도 전통문화가 여전히 서구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서 비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을 인간의 조건을 알지 못하는 천박한 낙천주의자이자 공리주의자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우리 생활의 물질적 기반으로 질병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생활의 편리를 실현했는데도 비과학자들은 자연의 법칙에 흥미가 없으며 과학적 개념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과학'이라는 용어는 19세기 후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신학적 형이상학적인 것을 배제한 물리적 실험적 과학이며, '과학자'는 자연과학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제한적으로 사용하였다. 스노우가 제2차 세계대전중과 전후에 영국 과학자의 25%에 해당하는 3-4만의 과학자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 그들은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지성인이라고 하면서 디킨스나 셰익스피어도 읽지 않았고 음악과 사진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면 예술에 대한 소양이 거의 없었다. 전통적 문화에 대한 경시는 과학자가 가져야할 창조적 상상력을 억제시키고 언어적 표현력의 부족으로 과학자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사회와 교육이 과학적 문화와 인문적 문화로 분리되어 있다는 <두 문화>의 아이디어는 그가 말했듯이 많은 이들이 이미생각하고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기에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시대정신에 맞아 수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며 그에게 위대한 명성을 안겨주었다. 스노우는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화학자로서 캐번디시 연구소의 특별연구원이 되었으나 어린시절 부터 책벌레로서 광범위한 독서를 해왔으며, 하급 중산층에 속하는 기술자 집안에서 출생하여 빈부의 불균형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혁명을 통해 공업국과 비공업국 사이의 격차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반인간적 태도라고 생각했다. 특히 스노우는 비과학자인 전통적 엘리트들의 잘못으로 경제 공황과 두번의 무서운 세계대전을 경험하였다고 생각했기에 과학을 하나의 위대한 희망으로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스노우의 강연 이후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다윈 이래의 모든 과학의 진보 이상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졌고,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호킹같은 뛰어난 사람들이 최첨단의 창조적 과학연구에 대해서 대중들과 의사소통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스노우의 <두 문화>는 그 시대의 뛰어난 문제 제기였으나 학제간의 이해를 위한 교육과 과학자들에 대한 고전교육 및 독서권유를 제외하면 해결 방법의 제안은 거의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스노우는 두 문화 사이의 경계에 대한 원인으로 교육의 전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교과목의 수를 줄이고 선택과 심화학습을 하는 교육과정으로 바뀌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옳은 방향인지 의심이 생긴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대학입학시험에서 문과는 과학탐구과목을 이과는 사회탐구 과목을 아예 선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해야하는 탐구과목의 수도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 학생들에게 학업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학생들이 과연 고등학교 일학년때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선택을 바르게 할 수 있는지 서로의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현대에는 스노우가 살던 시대에 비해 과학발전의 속도는 더욱 빠르고, 특히 생명공학과 전자공학과 같은 응용과학의 발전은 눈부셔서 일반인은 과학의 발달에 의한 생활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도 숨가쁘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생태, 환경을 중시하고, 전통과 정신문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가 떠오르고 있다. 과학에서 시작하여 인문학으로 마쳤지만 끝내 과학과 인간에 대한 첫사랑을 잊지 않았고 가난한 나라에까지 과학혁명이 이루어져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낙천주의자이자 인본주의자였던 스노우가 현대사회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