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마케팅수업시간..또 원정가서 들은 광고홍보학과 수업때 propaganda에 대한 말을 들어보고, 최근에 촘스키책에서 많이 본 말이다. 또 책의 맨앞에 이 양반이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는 말처럼 촘스키는 언어학자(본업이 언어학자이지..저는 박사의 한자적 의미를 알려주는 듯한 영감님이죠, 넓을박자인데, 요즘은 많은 박사가 한가지만 아는 바보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때문이죠)로써 정치적인 선적활동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많은 호기심을 갖고 보게되었다.
선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이, 절친언어 "선동"이란 말이 있고, 그 대상이 일반 대중, 군중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정도가 머리속에 남아 있다. 또 최근의 MP3 file download(팟캐스트)와 관련하여, 지식인들은 무지한 대중을 선동한다고 비판하고, 그들은 진실 또는 합리적 추정을 하는 논쟁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지식인들의 비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는 측면이 책을 선택한 한가지 이유이고, 얼핏 지나가면서 서울시장님이 한마디 적은것이 두번째 이유였던것 같다. 세번째 이유는 밝힐수 없다.
문장이 매끄럽지않아, 머리말부터 조금 혼란한 느낌과 산뜻한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담배를 들고 있는 멋진 여성의 모습..노랑과 빨강의 표지, 겉지를 벗기면 악마의 조합이라는 검정과 빨강의 매혹적인 조합등 책은 제목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내용에 대한 나의 느낌은 저자의 의도와 같이 될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 선전이란 말이 저자가 말하듯 중립적인 또는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란 말한 부분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삼촌인 프로이트가 이책을 읽었다면(물론 나는 프로이트에 관한 책을 보지 않았지만....충분히 자문할 만한 주변인이 있긴하다), 혹시 최근에 본 철학적 사상가인 공자나 맹자..특히 노자가 봤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많든다.
저자가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남용에 대한 장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인게 아닌가한다. 특히 이를 직업으로 갖는 윤리관에서 저자는 윤리적 기준을 잘 따른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남용할 개연성이 높다는 측면을 볼때, 매우 위험한 그리고 매우 낮은 수단적가치에 치우친게 아닌가한다. 물론 선전을 통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할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한다. 하지만 의도가 나쁘게 사용될때 대책이 없다면..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기준으로 선전은 통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된다. 또 좋은 선전이 강제될때도 마찬가지겠지만..어려운 문제일수도 있고 쉬운 문제일수도 있다. 어째던 대중이 아닌 개인에겐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이 책과 관련된 부분으로 해외영업을 하는나에게 광고, 홍보, 선전등은 아마 조금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진실되게 제품의 장점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고객에게 제품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심기위해 노력하기도 했던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가? 바른 행동인가? 대한 질문을 갖고 접근할때 나의 생각은 좀 다른것 같다. 예를 들어 중요한 사실(제품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책에서도 말하듯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반복적으로 말했을뿐, 묻지않는 것에 대해서 대답할 이유가 없다. 칸트가 말하듯 집앞에 친구를 죽이러 찾아온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게 도덕적이다라고 자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성적으로 나는 옳다고 주장할수도 있지만, 나의 양심이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의 시그널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장점만 홍보한다. 그것은 진실이다. 몰랐을수도 있고, 알았지만 숨길수도 있는 이면의 문제 즉 홍보로 포장된 진실의 왜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나는 광고, 홍보, 선전, 마케팅이란 부분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또 많이 믿는다기 보단 참고할 뿐이다.
마케팅의 효과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믿는 확실한 사실은 "위대한 제품은 스스로 영업한다"라는 말이다. 위대한 제품은 pull marketing을 스스로 성취한다. 사용함으로 대중, 고객이 그 장점을 칭찬하고, 자발적인 충성도를 갖는다. 그들이 공급자의 위치를 이미지가 아닌 실제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아마 뛰어난 예술품, 음악 이런 아날로그적인것들이 그렇지 않을까한다. 하지만 천재적 재능은 제한되고, 보편적인 일장 일단을 갖는 대량생산시스템체제로 가기 시작하면, 영업의 존재가 필요하다. 기업은 고객에게 선전, 광고, 홍보, 판촉을 통해서 유혹한다. 아마 유혹이 보다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영업이란 것이 개인의 역량, 고객과의 관계등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제약을 갖게된다. 편차가 크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 이후에 기업의 선택이 적극적인 마아케팅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에 대한 나의 위치를 고객의 마음에 이미지로 만들어 심고, 이에 따른 전략을 개발하고 영업의 능력개발보단 전략에 맞는 강요된 전술, 개인의 역량이 전략범위내로 축소되고 위대한 개발자의 개념을 따라야하는 과정이 마케팅의 이면에 있는 사실이 아닌가한다. 이것이 저차원의 push marketing이 아닌가한다. 그과정에 적절한 진실파악은 고객의 몫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좋다고 광고하는 쇼핑프로그램을 보고 구매한 제품에서 큰 실망을 경험한 적이 몇번은 있을것 같다. 그 속에 판매자는 저자처럼 윤리적이고, 진실만을 말했을까? 혹시 사기와 같은 규제대상과 홍보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지는 않았는가? 뭐 이런 의문이 아닐까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제한된 선전은 윤활류로써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발전으로 디지털이란 문명에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나는 진정한 가치는 아날로그에 있다고 본다. 단지 디지털문명은 아날로그의 높은 가치를 낮추고 펼처서 많은 사람이 느끼게 해주는데 있다. 이 과정에 프로파간다, 홍보, 판촉, 광고등 다양한 활동이 있을 뿐이다. 아마 내가 요즘 가능하면 종이책을 손으로 넘기면 읽는 이유이고, 저자의 생각에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부정하는 이유인것 같다. 진실 그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선전이 중요하다고 생각치 않다는 생각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