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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락을 노래하는 한 많은 가지 위에서

글쓴이: 느린북love5의 블로그 |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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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를 꼬다 물은 그의 품새 속에서 나는 순박한 야수를 본다. 궁벽한 초옥을 닮은 이문구 그가 짓무른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것의 발원처를 더듬어보면 한국이고 중에서도 남한, 중에서도 1910-45년 일제식민지 시대, 나아가 한국전쟁- 이란 파편의 맥을 짚을 수 있다. 맥이라 했다. 절단 난데서 부서진 데서 멈추지 않고 팔딱팔딱 살아 꿈틀거리는 인고의 몸부림을, 나는 감히 이렇게라도 전달하고 싶다.


 



전前과 과거過去라는 것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이것이다. 연일 검은 그림자에 묻혀 살자니, 저리 아름다운 산천은 내 조국 위에 눈물을 띄우고 그리도 향기롭던 논밭 내음은 내 이웃과 형제들에게 시름을 얹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노래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젖은 갱지에 넋두리를 채우고 한 뙤기도 안 되는 마당에 시를 남기고 응어리진 우리네 누구누구 조상의 가슴 위에 지울 수 없는 토혈각혈을 새겼다는 것. 그리하여 황토는 여전히 황토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작가는, 뉘 집 마당 턱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이 뿜어대던 담배 연기에 조국의 시름을 기록했으리라, 이렇게 나는 괘씸한 추측을 해볼 뿐이다.


 



더불어 지금 또 생각해보면 내가 잃은 조국과 가족, 형제는 참 별 것도 아니었다. 인절미 하나 얻어먹고 의사의 오진으로 두 살배기 남동생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며 그 동생 잃은 슬픔으로 만취한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구름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며. 둘을 잃고도 내게는 여전히 욕 잘하고 건강하신 어머니와 사고뭉치 언니와 토끼 같은 동생이 남아 있었다는 것. 또 초코파이 하나 반으로 갈라 나눠먹을 동전 한 개, 장마철이면 변소간 똥물 넘실거려도 몸 뉘일 방 하나, 연탄불로 덥힌 물 받아 갈색 고무통에 몸담고 묵은 때 털어내던 그 고마운 부엌인지 목욕탕인지 하나-가 있었으므로 수시로 옷고름 적셔가며 살던 우리네 조상 누구누구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덜 자라고 덜 큰 게 무슨 벼슬이라고 생활보호대상자 아동에게 지급되던 그 연두색 털장화를 나는 죽어도 받고 싶지도, 신고 싶지도 않았다. 털 난 미물(쥐)하나 그 틈을 노려 자리만 지키고 서 있는 그 털장화 속에서 겨울을 났다. 그것은 그대로 새것이자 헌것이 되어버렸다. 그런가하면 다른 친구들과 색이 다른 누런 육성회비 종이를 뭉그적거리며 받아들고서는 ‘느그 엄마는 왜 그렇게 돈을 안 낸다냐?’묻던 담임의 시선을 피해 가뜩이나 소심했던 나는 더 벙어리가 되어야했던 내 과거와 과거의 과거는 얼마나 아픈 것이었을까.


 



작가가 써낸 시대와 인물의 질곡은 이보다, 나의 것보다 몇 배는 더 아프고 시리다. 다섯 손가락 지져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민중이란 나무에 열린 모든 가지가 그칠 줄 모르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아물지 못한 채 썩어갔다. 그렇게 쉬이 썩을 것 같지 않았던 나무와 산과 숲이 죄 자취를 감춘 고향을 찾아온 작가는 순간 실향민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고 만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고향에서의 추억뿐이었다. 자연과 사람과의 추억. 집안의 대들보로 무던히도 완고하셨던 할아버지, 그에 반해 비밀조직에서 무신 해방운동인가를 펼치던 아버지, 어린 꼬맹이였던 그에게 어머니 같았던 여종 옹점이, 동생 재롱 받아주듯 늘 데리고 다니며 재미난 세상맛이란 맛은 다 들여 주던 친형 같던 대복이, 동네 허드렛일이란 일은 다 제일처럼 해대면서도 정작 제 실속은 못 챙기던 돌쟁이 석공- 이들은 대부분 어지간히 오지랖만 넓고 정만 흥청망청 써대던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넉넉한 품속은 스산하고 질퍽거리기만 하는 세상을 단단히 굳혀간다.


 



진탕 술 마시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아무리 깽판을 부려도 관촌민의 귀엔 그건 늘 노래였으리라. 창가고 판소리였으리라. 목이 쉬어 터질 대로 불러대야 제 맛이라던 그들이 간직한 사람과 마을과 세상은 이문구의 눈과 가슴과 연필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당신들이여! 말맛나는 노래 한 가락 뽑아보려거든 이 문구의 관촌수필이란 악보를 필히 펼쳐보라. 그 사이 나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리. 도대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어 저 아린 속을 풀어주는지... 접동새 한 마리 노래 물고 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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