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갱, 고갱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반 고흐.
왜 반 고흐는 고갱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잘라야 했을까? 그 가슴 아픈 이야기의 스토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를 읽게 된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다. 난 그림이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전문서적은 별로 읽지 못했다. 읽으면서 얻는 재미가 흥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행적인 흐름에 00파로 나눠지는 그림이나 그리는 기법 등 알고자 하면 밑도 끝도 없었다. 그저 깊게 들어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알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반 고흐와 고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그들의 그림까지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반 고흐는 생긴 것처럼 우직하고 부드럽지 못하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돈은 없어도 물감은 좋은 걸 샀으며 술과 여자에 집착했고 한번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했다. 그의 성격과 생활, 작품들을 연속해서 살펴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으로 보였다. 그림에 미쳐있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술버릇이 고약해서 기괴한 짓도 서슴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고갱은 영국 신사 같았다. 매너있는 행동에 술도 적당히 했고 딱히 단점으로 꼽을 만한 것도 없었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반 고흐에 비하면 평범했다. 그런데 이 둘이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반 고흐는 기름이었고 고갱은 물이었다. 한데 모으지만 자꾸만 흩어지는....
반 고흐는 고갱을 무척 좋아했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부탁해서 고갱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집을 장만까지 했으니 고흐가 고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둘 다 그림을 팔지 못해 생계가 불투명했던 시절, 어느 정도 생활이 보장된 환경을 고갱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난 이 둘은 처음엔 잘 지내는 듯했다. 서로가 그린 그림을 인정하고 조언까지 했다. 하지만 성격이 다른 것처럼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도 판이하게 달랐다. 고흐는 그림에 감정을 투영했고 고갱은 그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서로가 추구하는 그림의 이상향이 다르다 보니 급기야 논쟁까지 하게 됐다. 불편한 관계에 있던 찰나 반 고흐의 우울증은 심해지고 술주정을 빈번히 하게 된다. 불안감을 느낌 고갱은 고흐에게서 떠나고자 얘기 했고 그 '충격'으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 것이다.
고독을 참지 못하는 반 고흐는 자기 곁에 있을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갱은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극단적이지만, 철저히, 서로에게 필요해 만난 계산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고독하고 쓸쓸하게 그림을 그리다 자살하는 고흐.
자살 전 2개월 동안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는 하루 평균 한 점 꼴로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다. 반 고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쏟아내고 죽은 건지도 모른다. 고갱을 그리워하며 죽은 건지, 아니면 우울한 나머지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더 이상 미련 없이 죽은 건지 아무도 모른다.
고독하고 불쌍했던 반 고흐. 이상하게 나는 그의 삶이 뜨겁게만 느껴진다. 고집불통, 사회성도, 인기도 없었던 그였지만 단 한 가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흐의 그림들이 이전까지는 그저 멋지고 예뻤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름다운 것도 다 슬프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