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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은 어떻게 변하여 왔을까?

글쓴이: No Pains,No Gains |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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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여 왔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화장술도 발전하여 왔다.


이집트에서는 짙은 화장이 유행하였으나 그리스에서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미를 추구하였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운 육체를 얻기 위하여 운동을 하였다. 올림픽이 왜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로마에서는 모공을 깨끗이 청소하고 털까지 제거하는 완벽한 화장을 추구하였다. 풍자가들은 여성들의 얼굴이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엄살을 떨 정도로 두터운 화장이 유행하였다.


 


중세이후 종교는 교인들에게 화장을 금지시켰다. 예수는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악마는 7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이 인간을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창조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화장으로 변화시킨 여자들은 악마로 치부되었다. 또한 목욕도 금지시켰는데 중세인들은 영성체 이전에 한번 정말 필요할때 한번 목욕을 할수 있었다. 여름에도 목욕을 할수 없었는데 당시 수도원의 기숙사에서는 땀냄새로 생기는 악취를 막기위해 겨드랑이사이에 방향주머니를 찰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르네상스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위생에 대한 관념도 바뀌는데 청결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을 분리하는 기준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집에는 욕실이 설치되었고 목욕을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목욕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배려' 로서 1주일에 한번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19년 육군병원에서 탄생한 성형수술은 여성들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안겨주었다. 허리와 허벅지의 군살제거, 주름살제거등 여성들은 자신이 원했던 모습으로 마음껏 변화할수 있게 되었다. 한 성형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형수술의 발전으로 20년 후에는 추한 모습이나 늙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도 차림새에 대한 소홀함과 마찬가지인 무례함으로 여겨질 것이다"


촛불로 제거하던 겨드랑이의 털은 면도로 대체되었고 여성의 지위의 상승과 더불어 다양한 미의 추구와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책은 유럽에서의 미의 기준의 변화, 크게는 풍속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뒤의 참고 문헌에 중국의 전족이나 비만을 부와 미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마사족, 히브리족 여성의 화장술등을 담아 동양과 중동의 미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화장술의 역사를 담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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