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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국이 소득평등사회라고?!

글쓴이: 자하님의 블로그 |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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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들중 자살률 1위인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우울한' 희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 소득 평등 사회라는 것이고, 평등한 사회에서 더 흔하게 나타나는 유일한 사회문제가 바로 '자살'이라는 점이다. "뭐, 한국이 소득 평등 국가라고?" "한국이 언제 스칸디나비아 반도국이 되었는가?" 빗발치는 질의의 아우성이 벌써 내 귓가를 아프게 한다. 나 또한 의심스러웠다. 내가 한국이 소득 평등 사회라는 희소식을 '우울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를 포함한 '99%'의 불평등 체감지수에서 나온 당혹감과 괴리감을 반영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지니계수를 들여다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소득이 평등한 사회라는 점이 드러난다. 지니계수는  소득분배의 불평등 상태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치인데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으로 0.311이었다. 지니계수 0은 완전평등을 나타내고, 1은 완전불평등 상태를 말하는데 보통 0.4를 넘으면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간주한다. 2012년 2월 8일 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0.3이고 일본은 0.323, 미국은 0.37이었는데 OECD 34개국의 불평등지수 평균은 0.311로 재밌게도 한국의 작년 수치와 같다.  


 


내가 계속 지니계수를 언급하는 이유는 지니계수가 클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득불평등이 건강문제와 범죄와 비만과 같은 사회문제와 직결된다는 사회역학분야의 연구결과 때문이다. 《평등이 답이다》(이후, 2012)의 저자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부유한 국가 23개국과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과 사회문제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역학조사했다. 역학조사는 원래 질병 발생의 원인과 변화추이를 연구하는 의학적 방법인데 저자들은 이를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방법론에다 접목시켰다. 이를 그래프에 나타내면 가로축(x축)은 소득불평등을, 세로축(y축)은 건강과 사회문제를 나타낸다. 그래프가 좌하우상의 모양새라면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건강문제나 사회문제가 더 널리 퍼져있다는 소리다. 저자들은 건강문제와 사회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심리적 요인들 가운데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대표적인 불평등 국가는 미국, 영국, 포르투갈, 호주이고, 평등 국가는 일본, 스웨덴, 핀란드, 벨기에다. 국제간 비교를 위한 국가선택 기준은 <세계은행>에서 2004년 4월에 발표한 세계 발전 지표에 근거하고 있다. 일인당 국민총소득을 공개한 국가 중 가장 부유한 50개 국가들의 명단에서 23개 국가가 최종 선별되었다. 한국은 아쉽게도 이 명단에 들지 못했지만 한국의 지니계수는 대략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된다. 따라서 한국은 저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소득 평등 사회다. 이런 사실이 위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서울 강북에 살고 있어서일까? 강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나의 불평등 체감지수를 급하게 올려놓은 탓일까? 


 


저자의 말대로 "경제성장이 정답이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평안과 행복이 증대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 빈곤국가에서는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객관적인 기대수명과 주관적인 행복감이 빠르게 증가하지만 중진국 수준에 다다르면 증가속도가 감소한다. 국가들이 부유해질수록 평균적인 삶의 질이 건강수준과 행복수준에 공헌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문제는 소득격차와 지위격차가 우리 모두의 심리적 복지와 사회적 실행능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가장 불평등한 사회에서 전체 인구 중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비율은 가장 평등한 사회보다 다섯 배나 더 높았다. 이와 비슷하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수감될 확률은 다섯 배, 비만일 가능성은 여섯 배, 그리고 살인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차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불평등이 가장 가난한 층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인구 대다수에 영향을 미친다."(218쪽)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 넷……." 학자와 정치인들이 보다 일찍 이 노래에 깃들어 있는 '평등의 힘'에 대해 눈치를 챘다면 좋았을텐데. 오늘날 우리는 99%의 보통계층과 1%의 최고소득층을 비교하는 '양극화사회론'에 익숙하다. 양극화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극단에 이른 사회인데 계니지수만을 보자면 한국은 양극화사회 운운하기는 아직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지니계수가 왠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 다른 지표들을 살펴보자. 지니계수외에도 피부에 와닿는 불평등지수를 손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꽤 여러가지다. 가령 한 사회의 전반적인 우울증 비율이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판매율을 보면 된다. 한국은 우울증 비율과 SUV 판매율이 꽤 높은 편에 든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닐 것이다. 굳이 학교 왕따까진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 친구의 부재,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가 꼽힌다. 우울증의 확산은 근본적으로 불평등의 만연을 알려주는데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사회적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낮은 사회적 지위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부르기가 쉽다. 가령 영국의 화이트 홀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지위가 낮을수록 심장병뿐만 아니라 암, 만성 폐질환, 위장병, 우울증 등을 더 많이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SUV의 인기도는 사람들간의 불신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조시 루어는 SUV가 인기를 끄는 경향은 단호한 개인주의를 숭상하고 타인과 아예 접촉하지 않으려는 불신의 징표라고 강조한다.


 


'일엽지추'라는 말이 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불평등 지수도 한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들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일엽'에 해당한다. 예컨대 신뢰 수준, 범죄율, 수감률, 십대 출산, 비만, 정신질환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그 사회의 경제수준이 아니라 불평등 수준에 의해서 정해진다.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을 때 우리의 건강과 사회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불평등의 원인으로는 증여와 상속의 차이, 교육 및 훈련 기회의 차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 질병과 사고 등의 우연적 요인의 차이 등을 꼽는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불평등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보다 건강문제나 사회문제가 세 배 내지는 심지어 여섯 배 넘게 열악한 경우가 발생한다.


 


"일례로 한 국가의 건강 수준이 낮다면 그 국가가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십대 출산율이 높으며, 읽기 점수가 낮고, 비만율은 높으며 정신 건강이 나쁘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불평등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국가가 사회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215쪽)


 


저자는 더 나은 삶, 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정치인의 정치적 의지 부족을 크게 우려한다. 저자는 평등에 이르는 두 가지 현실 노선을 비교하고 있는데, 하나는 스웨덴처럼 소득재분배를 지향하는 세금과 보조금 등 사회보장서비스를 통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처럼 세금이나 보조금 이전의 소득이나 시장 수입을 평준화하여 재분배 필요성을 더는 길이다. 스웨덴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이 두 노선은 상호배타적이거나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더 큰 평등을 위해서는 이 두 전략을 모두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문제에 잘 대처하는 국가들이 더 포괄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국가별 공공 사회 지출 규모의 차이는 불평등과 건강과 사회문제 지수 사이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가이지, 어떻게 평등에 이르는가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4·11총선을 앞둔 정치인과 시민 모두 이 책을 필독하고 더 많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다함께 불태웠으면 합니다.



 


※오식 정정


 


310쪽 "『포춘』 선정 선정 500대 기업을 보면"→"『포춘』 선정 500대 기업을 보면"
311쪽 "이전에는 회원제로 운영되던 공제조합, 상호부조 조직, 주택조합, 공제조합, 신용조합 등을"→ "이전에는 회원제로 운영되던 공제조합, 상호부조 조직, 주택조합, 신용조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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