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라는 색소성 건피증을 앓고 있는 앨리와 줄리엣, 로브. XP는 햇빛에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으로 햇빛에 노출되면 화상, 염증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병이다. 평생 햇빛을 쬘 수 없기 때문에 비타민D는 약으로 복용하고 낮에는 단 한 걸음도 밖에 나갈 수 없다. 해가 지는 석양 무렵에라도 나가기 위해서는 선글라스와 모자, 긴 팔 옷은 물론 몇 겹의 천으로 꽁꽁 싸매는 수밖에. 필연적으로 낮에는 자고 밤에는 활동하는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지만, 주인공 앨리는 로브에게 친구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당당하며 활동적인 줄리엣은 앨리와 로브에게 파쿠르라는 운동을 선보이고, 그들은 밤마다 이 건물, 저 건물에 뛰어오르고 점프하고 착지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파쿠르를 실행하던 어느 밤, 앨리는 한 건물에서 수상한 남자와 시체같은 형상의 여자를 발견하지만, 친구들은 그녀가 잘못 본 것이라며 앨리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 후로 앨리의 주변에 섬뜩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자유를 향한, 혹은 낮을 향한 그들의 바람은 간절하다. 병에 걸리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수명이 짧은 그들에게는 이미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 이미 XP로 인해 마음의 한 구석은 죽어가고 있었기에 그들은 파쿠르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자유를 향한 도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그들의 부모 또한 조용히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는 로브의 아버지는 햇빛 차단을 위해 각종 메이커의 점퍼를 로브에게 선물하고, 경찰서장인 줄리엣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밤에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면 조용히 순찰차를 돌려 멀어져간다. 앨리가 XP라는 것을 알고 떠나버린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엄마는 간호사로서 딸의 곁을 지키며 앨리의 의견을 존중하고 마치 친구처럼, 앨리가 원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다.
꿈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미래를, 줄리엣과 앨리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에 커다란 갈림길을 만들어 놓는다. 수상한 남자를 목격한 밤 이후, 앨리는 로브와 줄리엣과 멀어진다. 예전부터 줄리엣을 선망하던 로브를 사랑하는 앨리. 그녀의 마음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친구들에 대한 원망과 로브를 향한 사랑으로 빚어진 줄리엣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괴롭다. 하지만 앨리는 질투와 원망으로 슬퍼할지언정 망가지지는 않는다. 줄리엣과 로브가 없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완벽한 개인으로 독립하는 힘을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게 된 앨리는, 줄리엣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며 수상한 남자와 줄리엣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친구 줄리엣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그녀는 내가 알던 친구가 맞나.
수상한 남자의 등장과 여러 가지 사건들로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스릴러 이상의 그 무엇이다. 스릴러 같은 분위기는 앨리와 줄리엣, 로브의 인생을 조망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이 작품은 오히려 이 세 명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듯 하다. 앨리가 아니었다면 줄리엣은 가장 소중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간단히 그들을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줄리엣이 아니었다면 앨리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로브가 아니었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로브 또한 앨리가 없었다면 체념한 채 그저 그런 현실을 살아냈을 뿐, 미래를 꿈꾸는 앨리 곁에서 자신 또한 진심으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로 향하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스릴러와는 다르기에 작가가 결말을 맺은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들은 더 강해질 수 있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들이 가는 길이 곧 자신들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