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맞이해 노인층 인구증가율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시대, 그리고 앞으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인을 위한 도시는 어디에 있는가…….
교수라는 직함을 반납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이 된 저자는 《퇴적공간》을 통해 노인이 머무르는 공간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일대를 탐사하며 그들도 한 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에서의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한다. 유리방황하는 존재인 노인. 잉여의 존재로 퇴적 공간에 쌓여 있는 노인의 모습을 기록한 이 책은 노년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의 본모습일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을 물화 시켜 버리고 시장의 효율만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상품 가치를 잃어버리고 쓰레기처럼 분리되어 잉여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화 현상이다.
『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 나이 많은 노인들은 희귀한 가치가 있었고 정보자로서의 가치도 있었으며 지혜자로 존경받기도 했다. (중략) 불행하게도 장수가 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 마주 서 있는 것이다. (중략) 노인의 문제는 사회학이나 생물학적인 측면에서의 상실과 인문학적 측면에서의 인간 가치 사이의 어느 지점엔가 위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 - p32
저자는 1차 집단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체온이 있는 복지가 아니라 결국 돈이 매개된 복지로 이 시대의 노인들은 더욱 소외된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현행 복지 제도를 사회정치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족 해체의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노인 문제'이며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 종로 3가 일대다. 1차 집단인 가정의 붕괴 현상은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인한 '나'를 제외한 '남'을 경쟁관계로 인식하고 '개인'만 남고 '우리'는 사라진 실태로 이어졌다. 국가는 그 구성원들의 요구를 맞춤형으로 채워야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시도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생겼고, '요구된 복지'도 수용하기 벅찬 국가가 '찾아가는 복지'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 한다. 국가가 모든 개별자를 상대로 책임지려는 무모함으로부터 벗어나 가정과 공동체가 더불어 그 부담을 나눠지려는 정책으로 복지 문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노인들을 위한 복지의 철학이 새롭게 정립될 필요성을 제기한다.
노인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용도폐기 되었다는 현실에 저항한다. 공존의 일원이 아닌 제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리된 존재, 강제적으로 분리시키는 사회적 기호로 작동하는 실버 우대용 교통카드, 노약자 지정석 픽토그램, 요양시설 혜택 자격 등을 예로 든다. 선진화된 사회제도는 이들을 정상적인 무리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데 진정한 사회보장제도의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실버세대는 노동권을 가진 주류 사회로부터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노동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지는 시혜는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힐 뿐이다.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를 인정받지 못해 잉여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군이 퇴적되어 있는 공간인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을 저자는 참여자이면서 관찰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며 노인들의 사유를 들여다본다. 이곳은 과연 실버 세대들의 파라다이스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서울노인복지회관 프로그램 사례를 들며, 센터의 지원이나 노인들의 활발한 참여에도 불구하고 덧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하는데 이미 노인 자체가 생산성의 주체가 아닌 소멸의 주체로 센터가 진정한 인간 자아실현의 텃밭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적인 노인'층이 늘어나 그들은 비록 굶더라도 빵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남긴 잉여 인간의 집합인 퇴적공간을 노화, 노인, 죽음의 개념을 철학, 역사, 예술, 종교, 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며 노인과 죽음에 관한 저자의 폭넓은 사유가 담긴 《퇴적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문제 즉, 작은 공동체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그리고 노인복지의 큰 그림을 보도록 부추긴다. "우리는 모두가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이다." 라고 저자가 말하듯 노인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반드시 닥칠 문제다. 급변하는 이 시대의 부적응자로 보는, 자연사 이전에 존재 소멸되는 개념의 노인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퇴적공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읽고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면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회정치적으로 변화가능한 루트가 있긴 한 것일까 하는 참담한 고민도 절로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