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제물포가 생각난다. 우리 딸이 다니는 학교 물리 선생님 별명이다.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다고 제물포라고 부른다는 물리 선생님. 지독하게 어려운 물리의 난해함을 공연히 선생님에게 푼다. 내가 보기에는 선생님도 가르치는 내용에 자신이 없으니 제물포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지금 마흔인 동생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해도 S대에서 가장 높은 커트라인을 자랑하는 과는 의대가 아니라 물리학과였다. 동생에게는 물리학과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똘끼 충만한 천재를 떠올리고는 했다. 물리학과 다니는 사람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우러러 보였다. 나는 물리에 ㅁ의 한 변조차 이해 불가한 세계에 살았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용이라고도 하고 청소년 용이라고도 하는 이 책 '클라우지우스가 들려주는 엔트로피 이야기'조차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클라우지우스의 약력이 나올때는 끄덕끄덕 넘어 가는데 후반부 열과 운동에너지가 나오면서는 책을 읽으며 오늘 점심에 뭐먹을까 따위의 잡념이 슬금슬금 뇌속으로 침범했다. 그런데도 후반부 엔트로피에 대한 개념이 나오고 우주의 엔트로피로 넘어가면서 그 확장의 방식에 깜짝놀랐다. 단순한 열이야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우주로 확장되는데 그 확장의 솜씨가 아주 유려했다. (사족을 달자면 이 책의 저자 또한 내가 그렇게 똘끼충만 천재들이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한 S대 물리학과를 나온 사람이다.) 엔트로피라는 개념에 대해 전혀 무지한 나 같은 사람을 아주 짜릿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느낌만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내 과학적 두뇌는 1+1=2 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 그런데 1은 어디서 나온거지 하는 수준이니까. 바로 그 때 아주 유용한 자료를 찾아냈다. (이건 순전히 수업료의 힘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기로 했으니까. 그아이들에게 거저 받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나는 아이들에게 이 강의를 들려 주면서 저자의 말씀을 직접 들어봐야 한다고 하겠지만-_-;;;)
EBS에서 2001년 저자인 곽영직 교수가 '열과 엔트로피'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 그대로이다. 이 강의를 듣고 나니 그제야 엔트로피 개념이 확실해졌다. 방은 지저분해 지는 것이 당연하고 인종은 섞이는 것이 당연하고, 질서는 깨지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확장의 묘미에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는 순간에서 우주까지 사고를 확장하는 재미, 이러한 것이 바로 좋은 책을 읽는 묘미다.
- 열 역학 제 1의 법칙 : 한 종류의 에너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바뀔 수는 있지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 에너지 보존의 법칙.
- 열 역학 제 2의 법칙 :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를 수 는 있지만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는 흐르지 않는다. 또한 운동 에너지는 모두 열에너지로 바뀔 수 있지만 열에너지는 모두 운동 에너지로 바뀔
수 없다. - 이는 열량을 온도로 나눈 엔트로피로 설명 가능하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