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에서 호교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외부 사상과 종교의 공격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방어했던 신학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러한 표현을 빌리자면 리처드 도킨스를 호지론자(護知論者)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유명한 저작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과학자의 면모보다도 "과학의 교주"가 오히려 확실한 그의 이미지로 맞을 것 같다.
그 어감이 어쨌든지간에 난 그러한 그의 모습을 존경한다.
아무도 나서려 하지않는 진흙탕에 누군가 뛰어들지 않는다면 진흙탕은 여전히 진흙탕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고, 리처드 도킨스는 그런 점에 있어서 종교와의 토론(?)이라는 진흙탕에 투신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이라는 책은 내게는 매해 필독서적이기도 한 리처드 도킨스 컬랙션의 일환으로 선택된 책이다.
1. 리처드 도킨스의 고민
이 책은 삽화가 가득 등장하는 과학 입문서이다. 아니 종교비평 입문서이다. 아니 신화비평
입문서이다. 아니...그 뭐랄까...어쨌든 리처드 도킨스가 지금까지 쓴 책들 중에 가장 쉬운
책이고 초등학생들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부모님이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금서목록으로 지정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학 입문서로서는 상당히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내용과 그림들로 가득차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게 딱 어울리는 교양 과학서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용이 쉽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리처드 도킨스가 고민 많이 하셨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리처드 도킨스의 전작, '악마의 사도(A Devil's Chaplanin)'라든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보면 호지론자로서 무식한 종교쟁이들을 비판하는
내용들 중 어린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성세대로부터 종교적 가치관을 주입받으며 자라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나온 책이다.
한 마디로 다 큰 어른들이 보기엔 별 시답지 않은 내용들 뿐일지 몰라도 - 물론 성인들에게도
유익한 내용들도 꽤 된다.- 어린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대신 보고 잠들었으면 하는
희망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가당치 않을지 몰라도, 이런게 필요한 건 사실이지.)
2. 현실과 꿈의 구분요소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잠들었을 때 꾸는 꿈이 사실은 현실이고, 잠에서 깨었을 때 맞닥뜨리는 장면이
정작 꿈이라면?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별도의 교육 없이도 현실과 꿈을 구분할 줄 안다.
현실은 철저하게 인과관계를 따르지만 꿈에서는 인과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하나의 현상이 아직 상당 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거나, 그 현상이 너무나
오래된 과거여서 추론 가능한 증거가 너무나 단편적이라면?
바로 그 지점에서 인과 관계는 성립되기가 쉽지 않고, 결국 여기서 많은 인간들은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된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파생되어온 인간의 이런 저런 설명들 - 대표적으로 신화나 종교적
현상들 - 을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결국 현실과 꿈을 명확히 구분짓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각 장의 내용은 어떤 현상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그 질문에 대한 꿈과 같은 해석들
(신화, 종교, 교리 등)을 대충 설명하고 그 허구성과 함께 과학적, 통계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몽환적 요소를 과학적 설명들과 함께 이어붙여놓은 것은 나름 독특한 발상이기도 하고,
좀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분명 이 점은 이해해줘야 한다.
세상에는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무엇보다도 리처드 도킨스는 이것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번 흥미거리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려한 삽화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전혀 아쉬움이 없는 책이다 .
무엇보다도 이 책은 잠자리에서 들춰보고 잠들어도 좋을, 몇 안되는 교양과학 서적 중 하나이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의 바램대로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을 위해 읽어준다면 더할나위 없는 책일 것 같다. 당신이 수긍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