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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글쓴이: Panis Angelicus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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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로서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가항력에 대해 어른은 훨씬 자유로울거라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돈을 버니, 사고 싶은 물건이나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도 있고, 어른들에게 야단맞거나, 지겨운 학교를 다닐 필요도 없으며, 아이라고 금지된 여러가지 행위(늦은밤 TV시청이나 제한등급의 영화보기 등)나 다양한 장소에도 마음대로 갈 수(술집, 오락실, 당구장, 다방 등)  있는 권리 등이 그것이다. 멋지게 차려입고 회사로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밤 늦게 거나한 취기로 따듯한 통닭을 사오셔서 뿌듯해하시는 모습 등도 어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지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동경은 아이와 부모라는 관계 속에서만 보여지는 어른이라는 존재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지고,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야하지만, 그 외로움이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더 적은게 어른의 위치라는 것을,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긴장시키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소외당하거나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미처 헤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간 훈육과 귀감이라는 관계 속에서만 어른을 접해온 아이들의 입장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이니까.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단지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지기만 하면 현재 해결이 난해하거나 불가한 여러 문제를 거뜬하게 짊어지고 헤쳐나갈 능력이 생길거라는 어린애스런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스로가 자신의 나이, 지위, 역할에 맞추어 자신의 미련과 동경, 몽상 등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어른들만의 사회 속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때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더라도 그 깨달음을 어떻게 발전적 실천으로 연결고리를 이어가야할지를 몰라 망설이고 주저하거나 아예 손을 놓아 버리는 이들도 있다. 사회의 시스템이 고도로 정교해지며 스케일이 큰 인프라의 통제 하에서 하나의 작은 역할만을 기계적으로 수행해야하는 현대사회의 어른들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기간은 전에없이 길어졌지만, 그 교육의 결과로 그들의 머릿속을 채운 건 정교하게 맞물린 상호작용의 사회 안에서 실수해 어그러지지 않고 잘 돌아가는 방법 뿐이다.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이해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하우와 마음가짐, 행복정도를 최적화시키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 필요한 인관관계의 범주와 가정을 돌보고 전통을 세워나가는 방법 등은 어떤 교육과정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이런 시스템 속에서 나이듦은 시스템화된 사회의 자양분 내지는 순정 부품화라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어른이 된다는 것과는 다소 별개의 문제가 된 듯도 싶다. 이렇게 덩치 큰 성인이 된 많은 이들 중 스스로 노력을 통해 깨닫고, 자신을 훈련시킴으로써 어른으로서의 온전한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는 이들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그 아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어른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부모의 입장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록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에 자리를 넓혀간다.


 


가끔은 요즘 아이들사이에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의 책임이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왕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린시절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를 만들게 지켜보기 보다는, 아이의 교우관계를 돕는다는 핑계로 이 아이는 이래서 가까이해선 안되고, 저 아이는 저래서 놀면 안된다는 이른바 <함께 놀 수 없는 아이들의 명단>을 부모가 만들어주고 있지 않는가. 그런 가르침 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비슷한 수준과 능력, 취향 및 생각을 하는 아이만을 찾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당연하다. 부모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 부모가 의도한 결과니까. 그런데, 결국은 이것이 다른말로 하면 바로 <집단 따돌림>이고 <왕따>가 아닐까.


 


이 책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은 평균이나 누군가보다 전반적으로 우월하다고 간주하고 사는 나를 포함한 많은 어리숙한 어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삶을 살면서 꼭 필요한 타인과의 공감 문제을 일깨우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필수인 버림과 비움의 미학을 알려주며, 스스로가 갈피를 못 잡은 채 아직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힘겹게 어른의 삶을 살아야하는 이들의 고뇌를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즉석에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나름대로 정의할 수 없는 어른이라면 이 책을 읽는데 할애할 시간을 부디 아끼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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