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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옛 작품에 대한 향수, 새로운 건 없었다.

글쓴이: 나폴레옹을 쫓는 모험 |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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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내가 하루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기 시작하면 두 장을 채 못 넘겼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은 하루키팬으로서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하루키가 마음먹고 정말 쓰려했던 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을 쓰다 보니 분량을 좀 더 늘린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하루 아침에 기적 같은 영감으로 소설을 써 온 작가가 아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하루하루 자료를 정성껏 모으고 자기만의 색깔로 시간을 들여 정성쓰럽게 만든다. 머릿속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글쓰기로 돌입한다. 그에게 단편소설이란 장편소설과는 스타일과 쓰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단편소설은 그야말로 짧은 이야기이니 장편소설과 달리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고 다양한 시도를 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장편소설이라면 달라진다. 비평과 비판, 칭찬과 명예가 딸려오는 작가에겐 더없이 중요한 실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2013년 하루키 신간 소식을 듣자 까무러치게 놀랐다. 분명 <1Q84>를 마치고 완전 지쳐버렸다고 했고 그 사이 에세이며 번역도 했을 텐데 너무 빠른 시일에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만약 하루키의 신간 소식이 들리면 당연히 <1Q84>인 줄만 알았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와서 하루키팬으로서는 걱정과 함께 기대로 가득했다. 그리고 곧 일본 현지에서의 출간과 동시에 도서 정보를 보았다. 그때 가슴이 무너져버렸다. 내가 예상했던 하루키 스타일의 발전된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출간했던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비슷한 류의 작품이었다. 하필 왜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여야 했는가? 난 궁금하기 앞서 실망했다. 하루키 팬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왜 이번엔 자신이 쌓아올린 작품들 위로 올라서지 못한 채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냐는 말이다. 이제껏 하루키 작품에만 볼 수 있는 성향들이 여지없이 반복되는 이 현상.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좀 더 쉬면서 써도 될 텐데 왜 하필 80년대 느낌이 짙은 '고독'과 '방황' 카드를 꺼내들었는지......<색차가 없는 다자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한참 동안 한숨을 쉬어야 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색채로 등장하는 설정, 이유도 모른 채 쓰쿠루가 그룹에서 쫓겨나는 설정, 시간이 흐른 후 이유에 대해 알아가는 설정, 그리고 <상실의 시대>와 같은 마무리까지. 90년대였으면 모르겠지만 <1Q84>까지 다 읽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루키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응원해 온 팬으로서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면 이렇다. #1_단편소설을 쓰다 보니 장편소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꽤나 마음에 든 작품을 만났다. 그래서 장편소설을 한번 써볼까, 마음을 먹고 글을 써본다. 원하는 대로 작품이 술술 잘 써져 그대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2_<1Q84> 집필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 집중한 나머지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1Q84>는 내가 생각하는 대표작이자 정말 쓰고 싶었던 총합소설이다. 앞으로 적어도 한~두 권은 더 쓰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1Q84>를 이어 쓸 동력을 잃어버렸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소설을 쓰며 잠시 부담없이 쉬어야겠다. 그렇게 가볍게 쓴 소설이 바로 <색차가~>이었다. 나에겐 <색채가~>란 그저 잠시 쉬었다가 갈 기차역인 것이다.  #3_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에겐 뭔가의 충격으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소설도 하루키의 심경처럼 우울한 분위기가 됐다. (#4_이건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이지만, 예전에 썼던 습작노트에서 하나 꺼내 장편소설로 완성시켰다.) 난 그저 세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하루키 스타일의 총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부 다 들어있다. 하루키와 비슷한 스타일의 주인공 쓰쿠루. 돈이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좋아하는 일은 끝까지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편이고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 어릴 적부터 꿈꿔 온 철도 회사에 들어가 철도역을 짓고 수리하고 관리하는 직업을 갖는다. 딱히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친한 친구를 만들지 않았고 만들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에겐 완벽한 그룹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만난 친구 네 명, 아카, 아오, 시로, 구로. 그리고 주인공 쓰쿠루 쓰쿠루를 빼고 나머지 친구들 이름엔 각기 색깔이 있었다. 쓰쿠루만 빼고. 그때 쓰쿠루는 자신만 색깔이 없어서 난해해했다. 그게 복선이었을까? 처음 만나서 대학생이 되서까지 이들 그룹은 5명이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친하게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쓰쿠루는 이들 그룹에서 퇴출 당했다.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통보를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쓰쿠루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알았다며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자살을 준비한 쓰쿠루는 결국 죽지 않고 마음의 상처만 봉한 채 살아왔다. 30대 중반이 된 쓰쿠루는 연상의 애인을 만나게 되고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연상의 애인은 과거의 친구들에게 이유라도 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쓰쿠루는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 사연을 듣게 된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준비한 쓰쿠루도 무기력하지만 그의 친구들 역시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 지배적이었다. 마치 등에 우울을 한덩이씩 매달고 있는 것처럼. 초반부터 죽음, 우울, 무기력... 마지막까지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굳이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다뤄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분위기가 우울해졌으니 말이다. 자살할 마음으로 살았던 주인공이 그 이유를 찾고자 나선다면 그 이유들이 기쁜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루키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요소들은 거의 없었다. 이것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다만, 글솜씨는 여전했고 여전히 문장들은 잘 읽혔다. 쓰쿠루가 친구들에게 배척 당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 시로는 왜 거짓말을 했으며 쓰쿠루에게 그런 재앙적인 말을 했던걸까, 시로에 대해서는 모든 게 의문이다. 그리고 쓰쿠루는 애인이 시킨다고 숨겨왔던 상처를 후벼파는건가? 그동안 물어볼 시도조차 왜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들. 소설이 당연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아주 잘 알지만 이번 작품은 정말이지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을 짜집기 한 것 같다. 이제까지의 작품들은 적어도 이어지는 연속성이라는 게 있었다. 쥐 3부작이라든가 '상실 시리즈'라든가 '<언더그라운드>+<약속된 장소에서>+<1984> = <1Q84>'라든가, 뭔가 연결고리가 있어야 이해라도 할 텐데 이번 작품은 좀 아리까리하다.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단편소설인데 내용이 생각보다 길구나'라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재미가 없다거나 작품성이 전혀 없어서 비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하루키 소설을 읽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뚜렷한 색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1Q84> 다음에 하필 이런 작품을 썼는지, 이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하루키가 지향하는 소설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작품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난 <1Q84>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넘을 수 없으면 소설가로서도 끝이란 말이다. 독자들의 수준을 한껏 위로 올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하루키 자신이 아닌가? 일단, <1Q84>의 끝을 보고 싶다. 그게 우선적으로 하루키가 마무리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을 위해, '하루키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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