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얼마 전까지 절판되었던 책입니다.
정가 9천원이었던 책을 중고서점에서 무려 10배의 가격에 구입을 했다는 포스팅을 보고 깜작 놀랐는데요.
그만큼 절판되었던 이 책을 꼭 만나고 싶었단 의미겠죠.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분들은 청소년 시절에 벌써 데미안등으로 이 작가에 푹 빠져있는 듯 합니다.
안타깝게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정도의 짧은 문구만 기억하고 있는 제게 헤르만 헤세는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좀 더 어릴 때 헤르만 헤세를 만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청춘일때의 공감을 느낄 수 없다는게 참 아쉽습니다.
왠지 굉장히 어려울 것 같고 심오한 이야기로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만 같았는데 말이죠.
얼마전 접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라는 에세이집과 더불어 이 책은 57편의 에세이로 인간적인 헤르만 헤세를 만나게 합니다.
병원의 이웃집 때문에 생긴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가 앉아 있는
대기실 위의 유리 지붕을 지나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채광창으로 들어온 태양 광선이 우리 머리 위에
넓게 내리비쳤다. 그 사내아이의 손과 무릎에 햇빛이 닿자
그 아이는 흠찟 놀라 움찔거렸다.
"그건 햇빛이란다."내가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머리를 위로 젖혔다가 위로 향한 얼굴을
천천히 앞족으로, 햇빛이 그의 눈에 닿을 때까지 움직였다.
그의 눈꺼풀 위가 잠깐 움찍거렸다.
얼굴 전체 위로 가벼운 통증이 일고 부드러운 소름이 지나갔다.
이어 그 아이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고, 작고 어린 입이 버어졌다.
그것은 단지 한순간의 일이었다.
헤르만 헤세가 눈이 안좋아 안과에 갔을 때 만난 소년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가득찬 대기실에서 기다리느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
늘 그렇듯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발견한 귀여워 보이는 한 소년.
그런데 소년은 눈이 보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만한 나이때 눈을 통해 자연을 오롯이 느꼈던 것을 떠올리며 소년이 안쓰럽습니다.
손과 무릎에 햇빛이 닿자 흠찟 놀라는 소년에게 "그건 햇빛이란다."란 말을 해줍니다.
헤르만 헤세는 마치 친절한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헤르만 헤세가 눈에 보이듯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꼭 곁에서 같은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생각없이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책은 심오하고 너무 어렵지 않은 헤르만 헤세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편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부담스러운 철학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생각들입니다.
1부에서는 나를 부르는 환희, 자연
2부에서는 유년 시절의 기억, 향수
3부에서는 나를 움직이는 힘, 인간
4부에서는 존재의 의미, 예술
5부에서는 일상의 기적, 여행이라는 주제별로 에세이가 분류되어있습니다.
마음이 가는 곳을 펼쳐 헤르만 헤세에게 쉽게 다가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전 3부 나를 움직이는 힘, 인간에서 들려주는 헤르만 헤세의 일상을 바라보는 생각들이 무척 와닿았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어쩌면 불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유년시절과 결혼생활을 보낸 헤르만 헤세는
왠지 갇혀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에세이 속에서 느껴지는 헤르만 헤세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따뜻한 시선을 가졌구나라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대가 생각한 무엇을 이미 다른 사람이 생각했는가가 아니다.
그 생각이 그대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체험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문구가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됩니다.
헤르만 헤세의 생각을 읽으며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 속엔 헤르만 헤세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소개합니다.
정원사, 시인, 소설가, 화가이기도 했던 헤르만 헤세.
그의 그림과 글들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를 떠올리게됩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세상은 변했다. 나의 삶도 역시 변했다.
내가 소년 시절에 낚시질을 하면서 느꼈던 즐겁고 충만한 행복감은 마치 전설처럼 사라지고,
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변해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 자신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즐거운 기분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낚시질 대신에 수채화를 그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기 전에 이런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의 생각들을 먼저 들어보는 것도
그의 이야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